임문자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는 어려서 이 동요를 부르면서 자랐다. 그 당시에는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가 당연히 늦잠자는 어린이보다 많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아침잠이 많은 것은 게으름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새 나라의 어린이들’이 그렇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특별히 무엇을 한 것은 없이 그냥 학교에 가거나 새벽에 공부를 더하는 것이 전부였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밤에 늦도록 공부하는 것이 생리에 맞아서인지, 벼락치기 공부를 밤늦게 하고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오히려 결과가 좋았으므로 아무리 어머니가 새벽에 깨워서 공부를 하게 하시어도 별로 효과가 없기도 하였다. 새벽공부는 체질에 맞지가 않았기 때문일 뿐만이 아니라 집중은 커녕 정신이 몽롱해지기조차 하였다.
사람들은 아침형과 저녁형이 있다고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즈음에는 저녁형의 사람들이 더욱 눈에 뜨이는 듯하다. 휴일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오전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집들이 제법 많이 있다.
이제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옛날과는 달라서 동양과 서양을 하루에 왕래하다보면 어느 곳의 시간에 기준을 맞추어야 하는지 애매하기만 하다. 동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몇 시간 전에 새해를 맞이하였건만, 서쪽에 있는 나라는 아직도 묵은해의 12월 31일인 것이다. 시간도 날짜도 모두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오늘이기도 하고 내일이기도 하였다. 당연히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가 부지런한 어린이의 상징이던 시대는 오래 전에 끝이 났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 관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방식이기도 하다.
밤과 낮의 구별이 없이,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도 많고 아예 새벽에 마감을 하는 식당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농경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부지런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된다. 새벽이라기보다는 한밤중에 일어나서 일터로 가는 사람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밤낮으로 도로를 고치거나 건설하는 도로공사의 공무원들, 항상 병원을 지키는 사람들, 경찰관, 군인, 그리고 밤에도 승객을 여러 곳으로 보내주는 갖가지의 교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끝도없이 많기만 하다. 이제는 부지런하다는 것이 우리들이 생활하는 일상의 체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남에게 뒤떨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것은 또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잠시 한 눈을 팔다보면 어느 사이에 새로운 발명품이 우리를 유혹하면서 여러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사용법을 알기에도 시간이 벅찰 정도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하다가는 신제품의 사용법을 몰라서 촌사람이 되기가 십상인 것이다. 얼마 전에 장만한 물건도 우물거리는 사이에 구식이 되고 무엇을 오래 지니고 있는 사람도 덩달아 구식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신없이 새로운 것이 탄생되는 사이에 아이들은 이제 디지털 세대인 ‘새 시대의 어린이’가 되어 있고, ‘새 나라의 어린이’이던 아날로그 세대인 어른들은 이 눈부신 문명의 신세계에 도착한 한 무리의 옛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일찍 일어날 뿐만 아니라, 밤낮의 구별 없이 생활전선에서 고전분투하면서도 이 넓고 확대된 세상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찍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만 일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편리하고 안락해진 문명을 누가 감히 외면할 수 있으랴.... ‘새 나라의 어린이’여, 이제는 일찍 일어날 뿐만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도 설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인간의 수명도 자꾸 길어진다는 이 아날로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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