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티드 베일(Painted veil)을 보았다. 서머셋 모옴이 1920년대를 배경으로 쓴 사랑이야기를 영화화한 수작(秀作)이다. 화면 가득히 수묵화처럼 번지는 중국 계림의 영상과 함께 가슴아픈 사랑의 감동이 오래 가슴에 맴돌았다.
자유분방한 키티와 빈틈없는 세균학자 월터는 결혼 후에야 서로의 취향이 다름을 알게된다. 키티는 남편의 자상한 배려를 외면하고 외교관과 바람이 난다. 월터는 아내에게 복수하듯 그녀를 끌고 콜레라가 들끓는 중국 오지 메이탄푸로 향한다. 둘의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결코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상처가 서로의 참 모습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치유된다.
가난한 중국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월터의 인간애을 보며 키티는 비로소 남편을 사랑하게 된다. 월터도 아내의 역할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그녀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월터는 밤낮으로 콜레라환자들을 돌보다 자신도 감염이 되어 죽어간다. 키티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며 그의 임종을 지킨다.
영화 속에서도 콜레라는 처참하였다. 병자들은 극심한 토사로 몸의 물이 다 빠져 죽었다. 오염된 식수와 음식이 요인이었다. 영혼이 강물 따라 저승 간다고 시체를 강변에 묻는 중국의 옛 관습 때문에 강물은 계속 오염되었다.
식수를 염소(鹽素)로 소독하기 시작한 이후, 콜레라나 이질 같은 수인성전염병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미국도 역병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얼마 전, 대장균(E.coli) O157:H7에 감염된 시금치를 먹고 셋이나 죽고 2백여 명이 발병하였다. 불과 3개월 전엔 타코 벨 식당에서 박테리아에 감염된 양파로 인해 70여명이 집단 식중독이 일으켰다.
잘 알려진 대로, 사람과 가축의 내장에 서식하는 대장균은 대부분 무해하다. 그런데 E. Cloi O157:H7같은 특수 종들이 채소나 설익은 고기 등을 숙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중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악성대장균에 감염되면 보통 3-4일간 피가 섞인 설사와 복통을 일으키다가 그중 3-8%는 심각한 HUS 병을 앓게된다. 이는 신장기능이 멈추거나 적혈구가 파괴돼 심하면 죽게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오염된 고기에서 나오는 살모넬라균도 무섭다. 간염을 유발시키기까지 하고 항생제도 잘 듣지 않는다. 최근 미 방역청(CDC) 통계를 보면 매년 7천6백만 명이 식중독에 걸리고 그중 5천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요즘 웰빙 바람으로 야채를 날로 먹는 게 유행이다. 날 야채가 위험한가? 그렇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30년 전보다 발병빈도가 훨씬 잦고 피해규모도 크다. 요즘 큰 식품점의 야채는 미리 씻은 후에 포장돼 나오므로 소비자는 그냥 먹기만 한다. 때문에 식중독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야채나 과일을 잘 씻어먹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씻는다고 안심할 수 없다. 세제를 써도 끈끈한 박테리아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과일을 깎을 때 껍질에 붙은 대장균이 칼에 통해 과육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우리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믿을 수 있는 식품점에서 채소와 고기를 고르는 일이다. 이들을 잘 익혀서 먹는 게 제일 확실하다. 허나 날로 먹어야할 때는 가축사육장 근처에서 키운 채소는 피해야한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간수할 때, 2-2-4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요리 후 2시간 내 냉장고로 옮기거나 버린다. 냉장고 저장 음식은 2인치를 넘지 않는다. 골고루 냉기가 퍼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냉장고 음식은 4일을 넘기지 않는다. 더 오래두려면 냉동한다. 푸성귀 나물이 입맛을 돋우는 봄이 오면서 각별히 유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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