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수술 끝에 장애인 판정을 받은 사람의 차에 최근 몇 번 동승한 적이 있다. 주차공간이 없어 다른 차들은 빙빙 돌고 있는데 가장 좋은 장소의 장애인 전용주차 공간에 세우는 특권(?)이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주변을 돌며 공간이 비기를 기다려야 했고 그는 혼잣말 처럼 “장애자들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고 불편한 심기를 토했다.
LA시내뿐 아니라 차량이 많지 않은 소도시에도 이제는 장애인 운전자들의 주차특권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인타운 곳곳의 핸디캡 파킹장도 만원사례였다. 장애인 없이 친지들이 그를 사용하는 사례도 눈에 보였다.
차 앞에 걸린 장애인 표지에 의심이 생겼다. 그를 확인이나 해주는 듯한 통계가 지난주 나왔다. 캘리포니아주 전체 운전자 16명중에서 1명꼴로 영구적 장애인에 발급되는 장애인용 주차카드를 소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무려 배가 늘어난 수치라 했다. 미터기 주차 공간을 차지하는 장애인 차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 주차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시당국도 타격이 크다고 한다.
물론 노령자 인구 자연적 증가와 심장질환및 폐질환등까지 장애범위를 확대시킨 장애자 천국의 너그러운 태도가 그를 늘렸을 것이다. 장애인의 발(자동차)이라도 편하게 해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줄여주는 차원에서 요식만 갖추면 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 운전자 16명중 한명이 장애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 행간에는 장애인용 카드의 남발과 사용자의 남용, 오용과 사기, 거짓말, 검은 양심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사망한 사람 이름으로 통용되던 장애인 플래카드 2만5,352개가 지난해 한꺼번에 말소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번 발급되면 본인이 반납하지 않으면 2년 만에 자동 갱신되어 날아 오는데 일부러 포기하는 정직한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는 뜻이다. 또 허위나 과장으로 신청하는 사기꾼들도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발렛 파킹도 피할 수 있고 미터기 주차도 무료, 시간제한도 없이 각종 주차불가능 장소에도 대부분 주차할 수 있는 특혜(장애인에게는 생존이다)를 포기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특히 LA 같은 대도시, 주차난이 심각한 도심지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강렬한 유혹일 것이다.
장애자 플래카드는 영구장애인 운전자의 편의를 최대한 돕기 위해 발급되는 것이다. 본인이 운전하거나 동승한 경우 아니면 절대 쓸 수 없고 적발되면 최고 3,500달러의 벌금형과 6개월의 실형이 병과 된다.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의 선만 밟아도 보통 주차벌금의 다섯 배나 물리는 등 엄격한 법규가 적용되고 있다. 차량국도 이미 장애자 플래카드 남용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아서 시드니에서도 장애인 주차장 이용자 23%가 불법이용자란 통계가 나왔다. 또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100살 이상 고령자에게는 장애인 주차증을 발급하는데 총 대상자는 총 1,700명인데 4,400장이 넘게 발급됐다. 사실상 이들중 합법적 운전면허 소지자는 겨우 3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직 핸디캡에 대한 인식조차 약한 한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복지부는 증명서 위조하고 돈 받고 가짜 진단서 끊어준 의사등이 만들어낸 가짜 장애인과 차량부정이용 사례 5,700건을 한꺼번에 적발했다.
문제는 주차특혜가 없으면 안 되는 진짜 장애인들이 입는 선의의 피해다. 이런 식으로 장애인 플래카드가 남발과 남용이 많아진다면 장애인 주차 특혜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참다못한 당국은 엄격한 심사를 해서 웬만한 장애는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고육지책을 쓰게 될 것이 뻔하다.
멀쩡한 운전자들이 장애인 전용 혜택을 가로채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아파서 서럽고 힘없는 그들에게 그 피해가 몇 배로 증폭되어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육신의 반짝 편리를 위해 장애인들의 불행을 디딤돌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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