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스포츠의 왕국이라면 한국은 드라마의 왕국이다. 양 국민이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드라마 못지않게 TV 화면을 장식하는 것은 맛 자랑 프로와 먹자 광고이다.
왜 그렇게 먹을 곳과 먹거리 종류가 많은지 상상을 뛰어 넘는다. 3개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이 북한을 제외한 전국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 생소한 이름의 식당과 음식을 매일 유사한 내용의 질문과 구성으로 소개한다. 옛날엔 해장국이라면 선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분되었는데 요즘은 듣도 보도 못한 각종 해장국이 서울의 강남 먹거리가에 특식 메뉴로 등장해 식도락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30년 해외에 거주했던 내 눈에는 방송들이 홍보성 식당 탐방과 각종 먹자 광고 홍수로 한국 전체를 먹자판 사회로 몰아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듯 보인다. 한 방송에서 서해 바닷가 식당을 찾으면 또 다른 방송에서는 동해 바다를 찾아가 비슷한 프로를 방영한다. 방송사도 경쟁인 만큼 새 프로가 방영되면 다른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개발하는 새 프로를 개발하기보다는 유사한 프로로 부담 없이 시청자들을 끌려고 한다.
사실 한국 사람처럼 먹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민족은 드물다. 맛있다는 집으로 소문나면 팔도강산에서 모여든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뤄 대박이 나고 또 다른 새로운 식당이 뜨면 썰물처럼 그 옛 손님은 미련 없이 떠나간다. 그러니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피가 마르고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먹거리에 한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지는 우리의 배고팠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위정자는 국민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등을 따듯하게 해주면 정치를 잘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지금도 변할 수 없는 지도자의 의무이자 피할 수 없는 책임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시절이 있었다. 가을에 추수한 쌀로 비료 값에, 종자 값에 농기구 값, 이자 등 이것저것 다 갚고 나면 먹을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남은 것을 아껴 먹어도 봄이 오면 다 떨어져 바로 춘궁기가 시작된다. 그 당시 배고픔이 뼛속 깊게까지 사무쳤던 기억 때문에 먹거리 화면을 보면 아직까지도 푸근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서울 먹거리 식당가에 들어서면 TV에 소개된 내용을 담은 광고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식당 주인에게 “어떻게 방송에 소개 되었느냐”고 물으면 방송국에서 매일 똑같은 프로를 이곳저곳에서 하다 보니 이젠 방송에 소개되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소개됐다는 자부심보다는 남들도 다 나오는데 소개 안 되면 자존심 상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들린다.
TV만 켰다하면 나오는 맛 자랑 방송들을 보면서 이제는 이런 프로들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경제대국이며 무역량도 10대 순위 안에 드는 나라의 방송도 위상에 걸맞은 세계 맛 자랑 프로가 함께 방영되면 좋겠다.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우리 것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으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외국의 식당들을 발굴하고 소개할 때도 오지 않았을까. 한국 맛 자랑 프로에 LA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요리들이 소개될 날도 그렇게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여행가는 한인들에게 하는 덕담 중 하나는 “맛 잇는 것 많이 먹고 오라”는 말이다. 한민족의 핏속에는 먹거리와 떼어낼 수 없는 유전인자가 있는지 몰라도 방송은 최소한 그런 DNA를 부추기는 ‘먹자판 화면’은 조금 줄였으면 한다.
김동열 자유기고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