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 같지만 “미국 주택시장은 이민자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지난해까지다. 집 값 상승이 버블이라는 경고가 나올 때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단골로 써먹던 논리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한정돼 있고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미국 주택가격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는 들어보기 힘든 주장이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120만명이 넘는 이민자가 미국 땅을 밟았음에도 미국 집값은 대공황 이래 처음 떨어졌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이민자와 주택경기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은 전과는 사뭇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지난 수년 사이 멋모르고 집을 샀던 이민자들 가운데 페이먼트를 하지 못해 집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소비자 권익옹호기관인 ‘책임 있는 대출센터’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크레딧이 나쁜 사람에게 주는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산 37만5,000명의 라티노 가운데 20%에 달하는 7만3,000명이 집을 차압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다.
향후 6년간 집을 뺏길 미국인들은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사람들 또한 이민자들이다. 본토박이 미국인에 비해 수입도 크레딧도 낮은 이들은 모아둔 재산도, 도움을 청할 곳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주택경기 침체의 피해를 제일 먼저 입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택한 것은 20% 다운 페이먼트를 하고 30년 고정 이자율 적용을 받는 전통 모기지가 아니라 다운이 없고 처음 2~3년간은 이자가 비현실적으로 낮지만 나중에는 대폭 오르는 기형적인 모기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이를 택한 것은 물론 정상적인 모기지로는 주택구입 능력이 미달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동산과 론 브로커는 브로커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이런 모기지로 집을 사도 몇 년 후 집 값이 오르면 다시 재융자를 하면 된다며 구입을 부추겼다.
그러나 주택 매매 건수로는 2005년, 매매 가격으로는 2006년 정점을 기록한 미 부동산 경기는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급속히 식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붕괴하면서 대출은 어렵게 되고 집은 팔리지 않게 됐다. 이 와중에 모기지 이자율마저 상향 조정되자 페이먼트 부담을 견디지 못한 주택 소유자 중에 집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30년간 매년 100만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왔고 그 중에서도 남가주로 가장 많이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1990~1995년의 남가주 부동산 경기침체를 막지 못했다. 지난 수년간의 부동산 붐은 낮은 이자와 온갖 기이한 모기지 상품, 당국의 느슨한 감독이 빚어낸 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 이것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흐름이었던 이민자 유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이민자와 소수계의 주택 차압률이 급증하면서 이것은 이제 정치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하나인 크리스 다드 연방 상원의원은 “엉터리 모기지가 판을 치고 있을 때 감독 당국은 뭘 했느냐”며 책임을 묻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러는 본인은 그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택 차압 홍수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감독 당국만이 아니다. 엉터리 낙관론으로 주택 구입을 부추긴 ‘전문가’들과 브로커들, 구입 능력이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론을 해준 융자회사들, 그리고 이들 말만 듣고 무턱대고 집을 산 구입자 모두가 문제다.
그러나 이중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물론 구입자다. 그래서 수천년 전 로마시대부터 “사는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caveat emptor)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낙관론을 견지해온 수많은 ‘전문가’들은 아직도 주택시장이 곧 회복될 것이라며 지금이 바로 집을 살 때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caveat emptor’를 기억하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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