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텍 대학살 참극이 한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한인들이 보인 충격과 근심은 이해가 간다. 미국인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수도 있고 안전에 대한 두려움도 생길 수 있다. 또 자식 잘못 둔 부모의 심정으로 피해자들에 사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건 후 한국정부와 일부 한국인들이 보이고 있는 반응은 좀 지나친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애도를 표명하는 성명을 낸 것은 양국 관계와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고려할 때 적절한 조치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한국정부를 대표한다는 주미대사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한인사회의 32일 금식을 제안하고 나선데 대해서는 오버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미국 조야를 상대하는 입장에 있는데다 미국여론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할 주미대사로서는 최대한 미국사회에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여 사과의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참회의 단식’이라니. 누가 누구를 상대로 참회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거나 국무총리급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는데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한국정부와 한인들이 보여야 하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뜻이지 참회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과 한인사회는 마치 큰 죄를 지은 양 어쩔줄 몰라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국이나 한인에 대해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미국인들의 어깨까지 흔들어 대며 “내가 잘못했다니까…”하며 사죄를 받아달라고 읍소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18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내가 한국인이지만 좋은 이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 같다”는 일부 한인들의 우려를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지나친 것 같다. 우리가 그냥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새삼스레 그 사실을 입증해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17일 범인의 신원이 발표되면서 그가 ‘사우스 코리안’이라는 사실이 반복 언급됨으로써 한인들의 우려가 증폭됐지만 의외로 대부분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범인의 국적’보다는 ‘총기소지’와 ‘대학측의 늑장 대응’ 같은 보다 사회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과공비례‘, 즉 지나친 겸손과 공손함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지금 한국정부와 한인사회 일각에서 보이고 있는 자세는 굴신에 가깝다. 참회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조용히 피해자 가족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뜻을 전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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