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이었을까? - 제임스타운 건설 400주년을 맞으면서 새삼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메리카 최초의 러브스토리’이다. 식민지 건설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존 스미스라는 영국 남성과 인디언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와의 관계를 둘러싸고는 설이 여럿이다.
가장 낭만적이기는 이들의 관계가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보는 설. 그들이 인종 문화 등 장벽을 뛰어넘어 깊은 사랑에 빠졌었다는 전설이다. 다음은 드러난 사실들만을 근거로 하는 객관적 시각. 포카혼타스가 백인 정착민들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굳이 남녀의 사랑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는 인디언들의 시각. 포카혼타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백인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이용만 당한 비극적 인물로 부각된다.
알곤킨 부족의 공주 포카혼타스가 백인을 처음 본 것은 1607년 여름께였을 것이다. 식민지 개발 사업체인 버니지아 컴퍼티 소속 선박 3척이 버지니아에 도착한 것이 그해 4월, 일행이 지금의 제임스타운에 도착한 것이 5월이었다.
당시 포카혼타스는 12살쯤 된 장난기 많고 재기 넘치는 소녀. 존 스미스는 용병으로 유럽 전역의 전쟁터를 떠돌다 식민지 개척선에 오른 27살 청년.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인 그는 자신만만하고 떠벌이기 좋아하는 허풍쟁이로 유명하다.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은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반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몇가지 예가 있다. 우선은 포카혼타스가 아버지인 포우하탄 추장에게 호소해 스미스를 살린 사건. 1607년 12월 스미스 일행은 인근 지역 탐사에 나섰다가 인디언들에게 붙잡혀 추장 앞으로 끌려간다. 추장은 처음 스미스를 환대했다. 하지만 그가 추장에게 거짓말을 한 게 화근이 되어서 바위 제단에 묶여 명령만 떨어지면 맞아 죽을 신세가 되었다. 그때 포카혼타스가 몸을 날려 그를 감싸 안고 죽음에서 구해낸다.
한번은 포카혼타스가 제임스타운을 위험에서 구한 적도 있다. 인디언들이 백인 정착촌을 기습한다는 사실을 안 그는 목숨을 걸고 캄캄한 밤길을 달려 이 사실을 스미스에게 알렸다. 1608년 겨울 화재로 백인들이 굶어죽게 되자 수시로 식량을 날라다 준 것도 포카혼타스였다.
그러던 그가 백인들로부터 발길을 딱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1609년 10월 스미스가 화약 폭발사고로 부상해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백인들은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후 4년간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에 발길도 하지 않았다.
포카혼타스가 스미스를 다시 만난 것은 8년후 런던에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포카혼타스는 백인 담배제조업자인 존 롤프와 결혼해 레베카 롤프가 되어 있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스미스가 눈앞에 나타나자 포카혼타스는 격노해서 몇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오랜 세월 소식 한번 없었던 데 대한 섭섭함을 털어놓았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포카혼타스는 폐렴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아메리카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국 땅에 묻혔다. 스미스는 이후 14년을 더 살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생을 마쳤다. 아마도 그것은 러브스토리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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