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 목사 / 은혜와 진리교회 담임
관광지로서의 Grand Canyon에 이어, 지난 호에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보았고, 오늘은 나무 쉽게 타협한 신학의 문제를 지적해본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평생동안 교회를 섬겨온 목회자다. 그런데 내가 목회를 해 오면서 체험한 사실은, 정확하고 제대로 터득된 신학이 아닌 어설픈 귀동냥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신학이론에 영향받은 교인들이 수많은 경우에 교회 내에서 목회자를 어렵게 하고 교회를 소란케 한다는 것이다. 나의 40여년 목회경험과 체험이 그렇다.
현재의 교회에 와서 등록하고 교인은 되었으나 내면의 의식구조나 행동에는 이 교회 정착 이전의 교파와 교회에서 배운 것들을 내내 고집하고 주장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매우 부정확한 편견이나 궤변이라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목회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로서는 충성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결과는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라는 교만과 독선의 산물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찰스 다윈 (Charles R. Darwin 1809~1882)이 1859년에 종의기원 (Origin of Species)을 통해 생명의 진화를 주장하였다. 그때 천지만물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했음을 믿는 기독교 신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진화론의 주장을 막았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다른 분야보다도 진화론을 가장 빠르게 수용한 것이 다름아닌 기독교의 신학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진화론을 수용한 것이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Wellhausen (1844~1918)이었다. 그는 성경이 성경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후대의 단체들이 필요에 의해서 편집한 것이라는 문서편집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기독교도 히브리파 유대교도들이 차츰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이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기독교가 생명체처럼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기독교의 모든 신학도 불완전한 데서 점점 완전으로 진화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와같은 신학이론 이후 지금까지 가지각색의 다양한 신학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혼미케한 변장된 몇가지 신학이론을 소개해 본다.
(1) 유신론적 진화론 (Theistic Evolutionism)
이 주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는다. 그런데 그 창조의 방법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십 또는 수백억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주장은 진화론이냐 또는 창조론이냐 하는 선택의 부담을 주지 않고 진화론의 모호한 부분을 창조론으로 보완하자는 이론이다.
(2) 날-시대 이론 (Day-Age Theory)
시편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는 말씀이 있다. 또 벧후3:8에도 주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첫째날, 둘째날... 하는 날들은 오늘날의 24시간의 날들이 아니라 천년 또는 한 세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는 말도 여기서 말하는 세대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창조의 날짜를 세대로 계산하려는 논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말씀 자체에 의해서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창세기 1, 2장에 쓰인 날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욤 (yom)이다. 그런데 똑같은 말이 창 1, 2장, 출20:11, 31:17에도 쓰이고 있다. 이렇게 다른 곳에서 쓰이고 있는 yom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날의 개념은 오늘날과 똑같은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함을 알 수있다.
(3) 간격이론 (Gap Theory)
창1:1, 2 사이에는 긴 간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창1장에 쓰인 단어들을 예로 든다. 창1:1에는 전혀 없었던 무의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한 바라 (bara)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런데 1:7, 16, 25, 26 2:1,3 등에는 이미 존재한 재료를 가지고 새로이 만든다는, 만드사라는 단어인 아사 (asah)라는 단어가 쓰여졌다. 이것은 창1:1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신 원시창조를 의미하며 이러한 맨 처음 창조한 원시창조는 사탄의 반역으로 실패한 창조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1:2이하에 다시금 새로운 세상을 재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 발견되고 있는 화석들은 이 원시창조 때 창조되었던 것들의 증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간격이론이 G.H. Pember(d.1878)와 C.I. Scofield(d. 1917)에 의해서 전 세계에 넓게 보급되었다. 그러나 창조라는 단어는 1:1만 아니라 1:21, 27에도 쓰여졌을뿐 아니라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창1:1, 2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4) 무대이론 (The Stage Theory)
이 주장은 J.W. Dawson(d. 1877)과 J. Dana(d. 1875)가 주장한 이론이다. 이들은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날이라는 말이 욤(yom)인데 이 말은 날이라고 번역할 수 있고 또 때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천지창조는 7일이 아니라 7때 또는 7 무대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5) 구조가설 이론 (Framework Theory)
이 가설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나 에덴동산의 기사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시 또는 산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왜 창조기사를 주셨는가? 그것은 창조가 6일이든, 7일이든, 7세대이든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창조신앙을 믿는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한 문학적 기술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이 나타난 이후 이렇게 등장한 다양한 신학이론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분명하다. 진화론과 타협을 시도하며 성경에서 창조신앙을 빼고 보니 남는 것은 자연만 남았다.
자연 (自然, nature)이 무엇인가? 자연은 창조되지 않고 저절로 (naturally)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 그 어느 곳에도 자연히 이루어졌다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는 창조주와 피조물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창조신앙을 희석시키고 창조신앙을 무시한 결과 현대의 인간은 성욕으로 뭉친 동물로 타락되고 말았다. 동물적 본능만 눈에보이는 인간들은 허무한 공백을 메우려고 물질에 집착하고 스포츠에 열광하고 향락에 파묻혀 세상을 잊어보려고 한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상실해린다면 인간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전능자이시고 나는 그분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성 회복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하게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잘못된 궤변으로 창조신앙을 잃어버린 불쌍한 인생들은 기본적인 창조신앙을 회복함으로 인간성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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