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주 만나야 한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오해는 늘고 섭섭함은 장작더미처럼 쌓여만 간다. 전화는 문명의 이기이면서 건전한 대화에 장애가 된다.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나누는 기계음은 많은 오해를 낳곤 한다. 만남이 중요한 것은 서로의 얼굴과 몸짓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상대방과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의미 외에 대화의 상대자들 간에는 일종의 정신적 자기장(磁氣場)이 형성된다. 같은 지역에서 살면서 우리는 친구나 이웃에 대한 자세가 원수보다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적국 간에도 서로 대사나 영사제도를 이용하여 필요한 대화 채널을 갖는다. 아마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원수같이 여기고 동지를 배신자처럼 간주하고 가족을 이방인으로 매도한 우리들의 태도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대개 사람의 듣는 능력은 말하는 능력의 거의 서너 배 수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를 주셨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뜻이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말하는 것도 기술이지만 듣는 것은 예술이다. 대화의 달인이 있다면 말하기보다는 듣기 쪽일 것이다. 들음에는 귀로 듣는 것(hearing)과 마음으로 듣는 것(listening)이 있다. 마음으로 듣는 것은 기술을 넘어선 예술의 차원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듣는 법을 익히려면 먼저 귀로 듣는 훈련을 쉬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잘 들어주는 사람이 대화에 있어 환영을 받는다. 마음(heart)이 편한 상대는 다름 아닌 듣는(hear) 기술(art)이 탁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호등의 의미를 잘 안다. 신호등 불빛에 따라 우리는 멈추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두 번 듣고 한 번 말하는 원리를 대화의 신호체계로 받아들여 응용하기만 해도 우리의 대화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를 보일 것이다. 한 사람이 자주, 많이 말하면 대화의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다. 대화는 소통이란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것도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화(dialogue)는 “통하여”의 디아(dia)와 “말씀”의 로고스(logos)를 합친 단어다. “말이 통한다.”는 뜻이다. 대화는 의사소통이다. 커뮤니케이션이다. 성공적인 대화는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을 솔직히 열어야 한다.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게 나누는 정신적 교감이 밑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소통은 말의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며 정신의 문제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대화의 수혜자가 되지 못하고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어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가장 힘든 것이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요, 부부간의 대화다. 서로에게 익숙해서 어투와 감정까지 읽다 보니 잘못된 선입견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둥지를 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창조적인 대화의 상대자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친밀함이 경멸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익숙함이 서로의 본 모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가까운 이에게 더더욱 열린 마음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아름답고 향기 나는 대화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대화의 기술을 예술로 한 차원 끌어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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