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佛)과 그의 가르침(法)과 또 출가사문들, 즉 스님들을 불법승 삼보라 하고 이 삼보에 대한 믿음을 삼신(三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신(三信)을 가질 때부터 불자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것이다.
무어라? 이름표라! 웬 이름표란 말인가. 불교에서는 이름(名)이란 것에 대해 줄기차게 냉소하고 비웃는 태도를 일관한다.
모든 이름은 처음에는 사실을 규명하고자 작명한 것이지만 결국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이 아닌 가짜라는 것이다. 좀 어렵게 표현하자면 명(名)은 상(相)이지 성(性)은 아니니 이름에 속지 말라는 이야기다.
속물일수록 이름을 밝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작명가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이다. 「이름붙일 수 없는 그 무엇」에 계속 이름을 붙이며 그 무엇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그들이다. 이것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해온 역사다. 발명과 발견이 없고 또 새로운 생산이 없다면 무엇에다 이름을 붙여왔을 것인가. 그러나 이 이름짓기 게임은 이름고치는 작업이 신속하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때만이 그 생동감을 이어갈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다. 동사는 빠지고 명사만 남게 되면 무엇이나 유적과 유물이 된다.
빛이 바래도록 오래된 이름표를 가슴에 걸고 있는 사람을 보면 측은하다. 옛날에 무엇무엇을 했다는 오래된 이름들 말이다.
그리고 이름표가 여러개인 사람들은 세월에 빛이 바랜 명찰을 뜯어내고 산뜻하고 발랄한 이름표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삼보에 대한 우리들의 위대한 믿음도 이름만 남으면 남루하게 된다. 남루한 믿음을 내걸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마주하기가 부끄럽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은 너무 굳센 믿음 때문에 이제는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저 먼 곳이 되었고, 불법과 세속법은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불일치의 병폐가 만연하고, 출가자와 재가자는 일종의 완고한 신분제도가 되어 서로가 신분을 따지는 꼴불견이 되어왔다.
이렇게 저열하게 된 삼보에 대한 형식적이고도 권위적인 믿음을 경멸하여 소승(小乘)이라 칭하고, 소승은 불법(佛法)이 아니고 불법(不法)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를 내며 일어선 새 불교운동이 사신(四信)을 믿는 대승(大乘)불교운동이다.
사신(四信)이란 삼보를 믿는 삼신(三信)에다 「진여심」을 믿는 일신(一信)을 더 보태어 붙인 이름이다.
즉, 우리에게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의 불씨가 본래로부터 갖추어져 있음을 굳게 믿으며 이 마음의 불씨를 살려내는 것이 불교를 숭상하고 믿는 근본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것이 ‘깨달음’이며 이런 깨달음이 늘 함께하고 있을 때 ‘깨어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오해의 소지는 없으며 트집을 잡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믿음이 도의 근원이라는 화엄경의 말씀도 「일체유심조」에 대한 거듭된 언표다.
이 마음은 삼보를 삼킬 수도 있고 뱉을 수도 있다. 우주와 그 속에 있는 삼라와 만상을 싣고도 가뿐하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것이 이 마음이다.
어찌 큰 수레(大乘)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큰 수레인 진여심을 덮고 있는 것이 습기다. 축축함이다. 진여의 이 불씨는 축축함에 짓눌려 불길이 열리지 않고 연기만 자욱하게 피우고 있는 꼴이다. 탐욕이 된 연기와 분노가 된 연기와 어리석음이 된 스모그말이다.
이 짙은 안개구름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탈출구가 없는 오리무중을 헤맬 뿐이다. 빛과 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심의 이대(二大)공덕이다. 진여심의 불빛이 바로 보리 지혜요, 진여심의 열기가 바로 순정의 자비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자비 공덕이다.
우리 마음의 불멸하는 청정심을 믿고, 또 이 마음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성(性)공덕은 자연히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것이 마음의 구조다. 대혜종고선사가 당시에 세상을 풍미하던 묵조선에 대항해서 간화선을 주창하면서 내세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청정 진여심은 긍정을 설법하는 주체이지 관조의 대상이 되는 객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긍정적인 마음이면 그것이 곧 진심의 직접적인 설법이며(성(性)공덕), 이 마음이 부정적이면 그것은 연기만 요란하게 피우는, 따라서 빛과 열이 없는 망심의 장난이란 것이다. 대승보살운동에 이어 간화선 운동이 제2의 대승불교운동이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대승과 간화선에 대해서 보기로 하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