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이브를 아시나요? 크리스마스 이브도 아니고 웬 육이오 이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경스럽게 들리겠지만서도, 적어도 나한텐 너무나도 큰 의미있는 날이기도 하다. 바로 바로 육이오 이브가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일이 주는 의미는 누구나가 특별할 것이다. 나에게는 비록 평범한 하루라고 해도 어떤 이에게는 그 날이 더 없이 특별하고 소중한 날일 수 있으니까….

생일에 대한 기억들! 유난하게 난 어렸을 때부터 생일 때만 되면 집안식구들 혼을 다 빼놀 정도로, 특히 부모님은 내 생일만 다가오면, “요번엔 또 어디서 얼마나 친구들을 데려올려나..“ 그러면서도 유난히 생일만 되면 극성을 떠는 둘째딸 비유를 다 들어주시고 맞춰주시고…. 초등학교 때는 거의 두 달 전부터 달력에 써놓은 생일이 언제 되나, 자고 일어나면 노래를 부르고, 그것도 모자라 반 친구들 3분의 1 이상한테는 미리미리 알려두는 준비성도 잊지 않았으니까….

나의 생일 파티도 나이에 따라 조금씩 틀려지는게, 초등학교 때는 거의 집에서, 중고등학교 때는 그나마 좀 컸다고 분위기 있는 분식집 (뭐 우리 때는 그래도 약간은 레스토랑 비슷한)에서 친구들과 우아하게 칼질을 해대면서, 일년에 한번뿐인 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친구들과 특별한 의식을 나름대로 잘 즐겨왔던거 같다.

대학에 들어오고나서부터는 좀 더 업그레이드 되는 생일을 추구하게 되었다. 다름아닌 매년 동성친구에게서만 받았던 생일 선물을 이성친구에게도 받을 수 있다는, 무언가 더 근사하고 로맨틱할 수 있다는 다분히 짜릿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상상이 아닌 실천으로 옮길 수가 있었고, 만약 생일 때 남자 친구가 없으면, 나의 이 의리있는 친구들은 기꺼이 생일 미팅도 주선해 주는 그런 섬세한 배려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섬세한 배려가 매번 섬세한 결과를 낳는건 아닌 법! 그래서 생일 때 가끔씩 이유 없이 바빠질 때도 있었고, 그래도 생일날은 부모님이 주신 두둑한 지갑으로, 친구들에게 생색을 내보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내가 부모님, 친구들 골고루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 절실히 든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생일이 되면, 예전같이 그런 느낌,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세월이 주는 변화일까? 생일도 나이에 따라 변하는 거, 그래서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요번 생일은 친구의 남다른 배려로 인해 내 마음이 참 따듯해짐을 느끼게 한 생일이었다. 생일 때 늘 받는것이 의례적이었던 꽃, 향수, 카드 등등 이런 것도 좋았지만 미국에 와서 살면서 내 생일날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없던 나,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 생일날 자기가 끓이는 미역국- 적어도 나에게는 서글퍼지는 일 중의 하나- 그래서인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번 내 생일에 친구가 끓여준 미역국, 맛을 떠나서 그런 따뜻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그런 마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아마도 그 어떤 가격으로도 매겨질 수 없는, 값비싼 생일 선물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비록 내 친구는 나의 이 고마움에 단지 선행을 행사했을 뿐이라지만, 나에게는 선행 이상으로 아마도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매년 또 육이오 이브가 오면, 어김없이 내 생일은 다가오고, 언제나 조금은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이겠지만 그때마다 난 언제나 과거에 그래왔듯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그거야말로 내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