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는 여러 정당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 은 ‘중도 통합 민주당’과 ‘국민 중심당’이다. 한 건물 입구 양쪽에 나란히 간판을 걸고 사이좋게 들어가 있다. 얼마 전 이인제가 ‘국민 중심당’을 탈당해 ‘중도 통합 민주당’으 로 자리를 옮긴 데는 두 당이 같은 건물에 있는 것도 한몫을 했으리란 설도 있다. 워낙 이사 다니기를 자주 하는 이인제이고 보니 이왕이면 가까운데 있는 당으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인제가 당을 옮긴데 대한 사람들의 분노나 비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인제 는 ‘당을 바꾸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당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 전에 몸담았던 당이나 새로 몸담은 당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것도 사람들의 무관심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불과 다섯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한국민들의 대선 열기는 의외로 가라앉아 있다. 정치인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무슨 폭로 기사가 나와도 대체로 반응은 무덤덤하 다. 모여 앉은 자리에서도 ‘이번 대통령은 누가 될까’가 별로 화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인제의 3선 도전과 이런 맥 빠진 분위기의 최대 수혜자는 손학규다. 10여년 동안 몸담고 있던 정당을 ‘수구 군사 독재 정당’이라고 매도하고 기회주의적인 처신 을 일삼아도 별로 비난받지 않으며 범여권 대선 후보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정도 변신은 이인제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게 대다수의 생각인 것 같다.
사람들은 이제 웬만한 배신이나 폭로에는 놀라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다 그런 것’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정치인들이 온갖 쇼를 하고 충격적인 일을 저질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간다. 이에는 실제와는 동떨어진 아무 의미 없는 정당 이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열린 우리당’ 탈당파와 합치기 위해 급조된 ‘중도 통합 민주당’이란 명칭부터 그렇다.
뭐와 뭐 사이의 중도며 뭐를 통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이인제가 탈당한 ‘국민 중심당’이 사실은 ‘충청 중심당’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두나라당’으로 갈라진지 오래며 ‘열린 우리당’은 ‘문 닫은 각자당’이 정확한 명칭이다.
공자는 제나라 경공이 정치의 요체를 묻자 ‘이름을 바로 잡는 일’(正名)이라고 답했다.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하고 정당의 이름은 정당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정치는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한국 사회는 세계 8대 불가사의 후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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