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신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아버지 키스 머독은 실패한 언론인이었다. 여러 신문사의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1952년 그가 사망했을 때는 잔뜩 빚을 지고 있어 이를 갚느라 ‘뉴스 리미티드’ 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회사의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고 호주로 돌아온 루퍼트는 22살의 나이에 뉴스 사의 경영을 떠맡게 됐다. 그전까지 언론보다는 도박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일단 신문사 사장 자리에 앉자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 사세를 키우고 잡지를 인수하기 시작한다.
승승장구하던 루퍼트 일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 이 때 일어난다. 스튜어트라는 원주민이 1958년 크리스마스 날 바닷가에서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이다. 뉴스 사는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기사를 실었고 그 결과 스튜어트의 유죄는 확인됐으나 그의 형량은 무기로 감형됐다.
그러나 이 일로 루퍼트는 플레이포드 총리의 분노를 샀고 중세 영국법의 유산인 반역죄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가 문을 닫게 될 것으로 판단한 루퍼트는 총리를 만나 자신의 경험 부족을 내걸고 선처를 호소했다. 총리는 루퍼트의 스승 격인 편집장을 해고하고 재판 비용을 부담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루퍼트는 이를 수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루퍼트에게 언론과 권력의 관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가르쳤다. 보수 성향의 그는 그 후 영국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대처 총리를 적극 지지했으나 정권이 노동당으로 넘어갈 조짐이 보이자 앞장서 토니 블레어를 밀었다. 미국에서도 2000년,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를 후원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연방 상원의원 기금 모금 파티에서 앞장 서 돈을 모아 주기도 한다. 그는 또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뉴스 계열 신문의 논조는 온건하기 그지없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위성 TV가 뉴스 계열인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권력자에게는 온순하면서도 기술 혁신에 저항하는 노조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것도 그의 특징이다. 그가 런던 신문사를 전산화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인쇄공 노조가 극렬히 맞섰지만 결국 이를 굴복시키고 뜻을 관철했다. 지금은 다른 신문사들도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권력과의 원만한 관계, 첨단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 단기적인 적자를 감수하고 값있는 물건을 과감히 사들이는 승부사적 기질 등이 그를 오늘날 세계 최대 언론 재벌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지난 31일 드디어 세계 비즈니스 신문의 대명사 월스트릿 저널을 인수했다. 100여 년간 이 신문을 갖고 있던 뱅크로프트가 후손들은 신문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됐으며 이번에도 주식 값을 얼마나 더 받고 각종 수수료는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에 더 신경을 쓰는 추한 모습을 보여줬다. 루퍼트 머독은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과연 머독 손에 들어간 저널이 고품격 신문의 위치를 지켜 나갈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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