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영어 공부와 조기 유학, 원정 출산에는 한국보다 열심인 나라가 없지만 똑같은 일도 미국이나 미국인이 저지르면 큰 문제가 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효선·미선 양 교통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다른 나라 국민이 몬 차에 한국민이 죽었어도 온 나라가 촛불 시위를 하고 법석을 떨었을까. 미군이 저질렀고 사과를 제 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모두 핑계일 뿐이다. 미군은 양국 합의하에 합법적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집단이고 수만 명이 수십 년간 움직이다 보면 교통사고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미국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더니 하니까 너무 늦게 했다고 난리를 쳤다. 지난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인 1.5세가 수많은 미국인을 살해했지만 한국이나 한국민의 사과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미국에서 열렸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반미 감정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하나다. 한국은 1945년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을 해방했고 1950년에는 공산화직전에 놓인 한국을 구했다. 일제 치하가 계속됐더라면, 김일성이 한국을 통일했더라면 지금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 것인가가 너무도 분명한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미국이 한국을 도운 것은 한국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 나라, 역사상 존재했던 수천 개 나라 중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은 나라가 하나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면 하는 이야기가 미국은 광주 사태를 방조한 원흉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미군 철수를 주장하다가 광주 이야기만 나오면 그 때 왜 미국이 왜 개입해 막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방조가 그렇게 큰 죄라면 어째서 광주 사태의 장본인인 전두환, 노태우가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도록 아직도 놔두고 있는가.
많은 한국인들은 반미 감정 촉발제로 미 입국 비자를 든다. 뙤약볕에 미 대사관 주위에서 몇 시간 씩 기다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반미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평은 내년 7월부터 사라질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주 ‘안전 여행 및 반테러 파트너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이 무비자 미국 방문국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비자국 지정 조건인 비자 거부율을 3%에서 10%로 올린 이 법에 따라 한국, 이스라엘 등 13개국이 후보로 올라가게 되며 그 중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적인 5개국이 선정되는데 한국만큼 잘 협조한 나라도 없기 때문에 뽑힐 것이 거의 확실하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첫 과실인 셈이다. 그렇게 되면 올 8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 미국 방문객이 내년에는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1994년 캐나다가 무비자 입국제를 실시한 후 한국인 방문객 수는 80% 늘어났다.
무비자 입국제가 시행될 경우 그 최대 수혜자는 한국인들의 주 방문지인 LA, 뉴욕, 워싱턴 DC 등 미주 한인 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한 명이 미국을 방문할 때 평균 3,700달러를 쓴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한국인 입국자 수가 2배가 되면 1년에 30억 달러가 미국 땅에 더 떨어지게 된다.
일부에서는 무비자 시대가 되면 매춘과 불법 체류자 증가 등 부작용을 우려하지만 이는 한미 양국 교류 증진이라는 큰 그림으로 보면 작은 일이다.
자유롭게 보다 많은 한국인이 와 미국을 보고 가면 그 동안 비자 가지고 까다롭게 굴던 미국에 대한 오해도 풀리고 미국을 바로 알 수 있는 기회도 늘게 된다. 무비자 미 입국이 엉터리 반미 감정을 불식하고 양국 관계를 더 가깝게 하는데 일조하기를 기원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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