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한 때는 도구를 만들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고 생각돼 왔지만 더 이상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과 유전자가 98% 일치하는 침팬지의 경우 나뭇가지를 꺾어 개미 사냥을 하는 것이 목격됐고 수십 개 단어를 가르쳐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할 수 있지만 동물은 하지 못하는 행위가 하나 있다. 바로 장사다. 서로 필요한 물건을 평화롭게 교환하는 행위는 아직까지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인간은 장사하는 동물’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은데 아직까지 그러는 사람은 없다.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장사와 상인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편견 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처음 인간은 물건과 물건을 바꿔 사용했지만 이것이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나온 것이 화폐다. 화폐는 중국 당나라 때 처음 나와 송나라 때 널리 쓰이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원나라 때 들어서는 재정이 쪼들린 정부가 이를 남발하면서 화폐는 휴지나 다름없이 변하고 명나라 때는 아예 사용이 금지된다. 역사적으로 길게 보면 정부가 발행한 화폐는 결국 휴지로 변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독립 전쟁을 일으킨 대륙의회가 발행한 지폐도 나중에는 가치를 거의 잃고 “대륙의회 지폐만큼의 가치도 없다”(not worth a Continental)는 영어 표현만 남기고 사라졌다. 인간이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화폐와 휴지의 유일한 차이는 신뢰다. 화폐는 사람들이 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상실하는 순간 더 이상 돈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크게 보면 자본주의 경제 전체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은행도 투자가도 꾸어준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비즈니스에 융자를 해준다. 이 믿음이 사라지면 현찰 거래를 제외한 경제 활동은 마비에 빠지게 된다.
세계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체납이 급증한데 있다. 은행들이 모기지를 가지고 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이것이 국제 금융시장에 팔려나가 세계 곳곳에 흩어지는데 어떤 펀드와 어떤 은행이 이를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다. 주택 시장에 대한 무한한 낙관과 신뢰가 이제 체납과 투자 손실에 대한 공포로 바뀌고 있다.
불안을 느낀 투자가들이 투자와 대출을 중단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조짐을 보이자 미 중앙은행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와 유럽 중앙은행은 1,000억 달러가 넘는 긴급 자금을 방출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이처럼 신속히 거금을 푼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수년 간 미 주택 시장은 100% 융자, 소득과 재산 증명이 필요 없는 ‘거짓말쟁이 융자’, 처음 2년 동안은 값싼 이자를 내다 갑자기 금리가 오르는 변동 모기지, 월 페이먼트 액수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옵션 융자 등이 활개를 치며 라스베가스 카지노를 부끄럽게 할만큼 투기장으로 변했었다.
이렇게 론을 얻은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모기지를 갚아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여러 번 제기됐음에도 월가와 융자 회사는 물론 감독기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부랴부랴 심사기준을 강화하고 노다운 모기지를 없애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조치지만 단기적으로는 집사는 것을 어렵게 해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주택 시장을 더 악화시킬 전망이다.
세계 경제는 97년 외환위기, 98년 러시아 부도 사태,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등 숱한 위기를 이겨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1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발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데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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