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항에 도착했던 6월 말은 장마가 시작하는 시기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도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따가운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건조한 공기와는 다른, 습기 찬 부드러운 공기와 태양이었다. 하루나 이틀 걸러서 비가 내렸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날들이 이어지면 이내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소낙비가 퍼붓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몰고 오는 여름 장맛비는 몇 년 동안 사막 기후에서 여름을 지내고 온 나의 메마른 마음도 적셔주며 나의 팔에 소름을 돋게 했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뜨뜻하게 불이 올라오는 마루 바닥에 엎드려서 방바닥과 강력 접착제로 붙인 듯이 꿈쩍도 안 하고 붙어 있었다. 그렇게 몸을 지지며 듣던 창 밖의 여름 빗소리와 바람 소리들…. 자주 내리던 비와 습기로 한국의 들판과 숲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서울 시내를 돌아 다닐 때, 아이들은 미국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들과 사람들을 신기해 하며 바라보다 흥분한 나머지 큰 아이는 청계천 물에 빠졌고, 경복궁에서는 뛰어다니다 얼굴을 다치기도 했다. 서울에 살 때는 가지도 않았던 인사동 거리와 용인 민속촌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나도 즐거웠고, 미국에 오래 사는 동안 나의 눈도 외국 사람이 되었는지, 한국 전통 물건들이 넘쳐나고 화랑들이 즐비하던 인사동 거리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백화점 슈퍼 매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온갖 먹거리들과 찬거리, 앙증맞은 케이크와 떡들 앞에서는 성당 구역반 모임 때 내놓느라 하루 종일 부엌에서 닭을 튀겼던 미국에서의 나의 모습과, 집에서 온갖 음식들을 만드느라 분주한 이곳 주부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영어 습득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외국으로 보내고 싶다는 학부모들과 부모보다 외국타령을 먼저 한다는 아이들, 교육환경을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일년에 5만 불이 든다는 기숙사 딸린 사립중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친구, 재산을 다 정리하고 온 가족이 캐나다나 호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 대학 교수직과 한국 대기업 상사들이 거의 기러기 아빠라는 현실은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점점 먼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국에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지, 그러니 너희들은 외롭지 않다고… 우리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떠나던 날 시아버님은 아이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시어머님도 맑은 정화수 떠 놓고 멀리 길 떠나는 아들 식구가 평안하기를 기도드렸고, 친정 어머님도 이른 새벽이면 자식들의 평안함을 비는 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리고 계셨다.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도 우리가 이만큼 자리잡고 평온하게 사는 것도 자식들의 평안함을 비는 그 분들의 기도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날 때마다 점점 늙어가서 마음을 애잔하게 만드는 부모님들과 훌쩍 자라나는 조카들, 전화 한 통이면 달려 나와서 밥 사주는 옛 친구들과의 재회는 이민생활로 지쳐 있던 마음에 생기를 넣어 주었고, 그들의 흔드는 손을 뒤로 한 채 우리 가족은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양가 부모님이 싸 준 온갖 먹거리들, 예뻐서 사 모은 소품들과 읽고 싶던 책들, 거기다 평소 필요해서 사고 싶었던 한식기까지… 우리의 여행 짐가방은 거의 이민 수준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때때로 한국이 그립듯이, 한국에서 살면 미국이 그리울 거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잘 안다. 두 달 가까운 한국 생활을 접고 집에 돌아오니 참 좋았으니까….
그래도… 이 다음에 은퇴하면 고향에 내려가 된장 만들고 싶다는 남편이 생각나 상가에서 사서 서재 천장에 매달아 놓은 황토로 만들어진 작은 메주 덩어리들과, 부엌 창가 구석에 자리잡은 미니 옹기 장독대 세트를 보면서 한동안은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다.
ch_hr@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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