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이 불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부시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대 악재인 이라크 사태가 진전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말리키 현 총리가 지도 능력이 없다는 등 비판적인 보고서가 줄을 잇고 공화당 중진 의원들까지 언제까지나 미군이 이라크에 머물 수는 없다는 등 발언을 하면서 조기 철군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라크라는 악재에 공화당의 재집권에 찬물을 끼얹는 새로운 장애물이 최근 새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서브프라임 발 주택차압 대란이 그것이다. 크레딧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미 주택시장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주택차압이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요즘에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누구 책임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가 대선 주자들 사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제일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는 힐러리 클린턴 연방 상원의원은 양심 없는 브로커들을 때려잡을 것과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연방 정부가 10억달러를 주 정부에 줄 것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존 에드워즈 후보는 약탈적 모기지 융자자들을 규제하고 자신이 갚을 수 있는 론만 빌리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며 배럭 오바마 후보는 주택 보존을 위한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여러 민주당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이를 최대 캠페인 이슈로 삼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 다드 연방 상원 재무위원장이다. 그는 이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행크 폴슨 재무장관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 올 9월 의회가 열리면 연방 하원도 이 사태에 관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반면 공화당 후보들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 불거질수록 부시 행정부의 또 하나의 실정으로 공격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만 모기지 시장의 혼란에도 불구, 미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2%가 경제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2001년 9.11 사태 직후보다도 높은 수치다. 뉴욕타임스는 올 미 주택가격이 57년만에 처음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2009년께나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무디스’ 등은 앞으로 10년 내 미국 집값이 지난해 기록을 갱신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고 ‘글로벌 인사이트’는 가주 실질 주택가가 지금보다 20%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같은 전망이 맞는다면 공화당은 2008년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해마다 선거를 결정해 온 경제와 안보 양쪽에서 치명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공화당이 믿을 곳은 FRB 하나뿐이다. 금리와 통화량 조절을 통해 미 경기 부양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FRB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내년 경기가 상당 부분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FRB는 세계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던 지난 17일 재할인율을 0.5% 전격 인하해 이를 진정시키는데 일조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보다 중요한 연방 금리 인하도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주택시장과 증시의 안정을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아직도 고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를 단행했다 인플레 망령을 불러들이지 않을까 하는데 FRB의 고민이 있다. 과연 버냉키 의장이 인플레와 경기 침체라는 두 바위 사이로 미국 경제라는 배를 무사히 몰고 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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