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 2일 8,000명의 영국군은 수단 카르툼 인근 옴두만에서 5만에 달하는 자칭 ‘회교도의 구세주’(마디) 아마드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영국군에게는 수단 및 이집트 군으로 이뤄진 1만 7,000여명의 지원군이 있었지만 이들은 전황 여하에 따라서는 어떻게 태도가 돌변할 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결과는 영국군의 압승이었다. 아마디 군 사망자는 1만명, 부상자, 1만3,000명, 포로 5,000명에 달했으나 영국군 사망자는 48명, 부상자 382명에 불과했다. 영국이 절대적으로 적은 인원에도 불구,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막심 기관총 덕분이었다. 당시 신병기였던 이 총의 위력으로 마디군은 영국군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쓰러져야 했다. 이 전투 결과는 영국의 힘을 중동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영국은 제2차 대전 직전까지 중동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이 전투 장면을 기자 신분으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1920년대 식민지 장관 시절 영국의 힘을 배경으로 오토만 제국의 무너진 잔해를 추려 모아 서로 원수지간인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을 한데 묶어 보호령을 급조하고 이곳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하셈가의 파이잘을 왕으로 앉혔다.
그러나 처칠의 이런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데이빗 로이드 조지 당시 영국 총리에게 쓴 편지를 보면 “주가 가고 달이 가도 오랫동안 우리는 비참하고 소모적이고 산발적인 전투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며 “왜 우리가 이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막에 군대와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가”라고 적혀 있다. 12년 동안 고생하던 영국군은 1932년 아무 소득 없이 이라크라는 신생 독립국을 탄생시키고 돌아갔다. 제2차 대전 후 이곳은 미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으며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십자군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회교권에서 외국군, 특히 기독교 문명권 군대의 회교 성지 주둔은 감정적인 이슈다.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 9/11 테러를 저지르면서 명분으로 내건 것도 사우디에서의 미군 철수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회교 중심부에 더 깊숙이 발을 디밀었다. 대량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라크 민주화로 바뀐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난 4년간 전후 처리가 엉망이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라크처럼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이 아웅다웅하는 인공적인 나라에서 독재라는 구심점이 사라질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점, 회교권 중심에 미군이 주둔할 경우 회교도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라는 점, 가시적인 성과 없이 미군 피해만 계속되는 게릴라전에 미국민이 어떻게 반응하리라는 데 대한 준비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그다드 함락 직후 세심하게 뒤처리 할 생각은 않고 직접 비행기를 몰고 항공모함에 내리는 쇼나 하고 있던 부시의 모습이 그릇된 정신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일이면 9/11 테러가 자행된 지 6주년을 맞는다. 그 동안 미국은 테러 원흉 알 카에다를 비호하던 탈레반과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통해 중동 패권을 노리던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테러가 미국 땅에서 재발하는 것을 막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라크에서 3,700명의 미군이 희생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10일 사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퍼트레이어스 이라크 주둔 사령관의 의회 증언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미국인들이 이라크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깨끗이 이곳에서 손을 빼고 나올 시나리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철군하면 각 종파간의 유혈 참극이 불을 보듯 하고 그렇다고 이라크 지도자들이 대타협을 통한 정치적 안정과 치안을 유지할 병력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자니 기약이 없는 것이다. 처칠도 손들고 나온 이라크 사태를 부시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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