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아주 얇은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 ‘먹을 게 없는’ 음식처럼 ‘읽을 게 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책 두께가 책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는 아주 작은 책으로 겨우 144페이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에 철학적 사유의 돋보기를 들이대는 ‘보통’의 다른 저작들처럼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이 책은 펭귄 로고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국의 펭귄 출판사가 회사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으로 기획되었다.
카뮈, 버지니아 울프,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프카 등 유명 문인들에 이어 알랭 드 보통이 70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당대를 대표하면서도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읽힐 작가들 중의 한 명으로 알랭 드 보통이 선정되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해준다.
이 책이 수록하고 있는 9편의 에세이는 저자의 전작들에서 가져 온 것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선별하고 결합시켜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해내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쓴 전작들과 달리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주장이 극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의 글쓰기는 ‘일상의 철학’이라는 용어로 정의되면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적인 순간들, 사건들, 감정들이 저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롭고 낯설며 희화화된 삶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가 평범한 우리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인정할 줄 아는 중용의 미덕을 지녔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을 읽는 것은 쾌감인 동시에 고통이다. 어떤 인터넷의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동물원에 가기’를 읽고 나니 마치 내 마음을 스캔당한 것 같았다”고.
9편의 에세이 중에서도 특히 첫번째 에세이인 ‘슬픔이 주는 기쁨’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때마침 올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니 기회가 되는 분들은 보통의 책을 들고 워싱턴 DC로 그림 구경 오시길 바란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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