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수담‘(手談)이라고 불린다. ‘손을 가지고 나누는 대화’란 뜻이다. 바둑 두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며 웬만한 고수들은 그에 걸맞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한 때 일본 바둑계를 주름잡던 고바야시 바둑은 ‘지하철류’라고 불린다. 조금이라도 실리가 있는 곳이면 지하철처럼 파고들기 때문이다. 반면 다케미야의 바둑은 ‘우주류’다. 변과 귀의 작은 집에 집착하지 않고 호방하게 넓디넓은 중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 한 때 이창호의 라이벌이었던 유창혁의 별명은 ‘화려한 공격수’다. 대마를 사냥할 때 그의 천재적인 감각과 묘수는 따라갈 자가 없다. 반면 지금은 좀 부진하지만 아직도 전설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이창호는 ‘돌부처’로 불린다. 어떤 형국이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상대가 지쳐 자멸할 때까지 묵묵히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정상급이 아닌 아마추어들에게도 나름대로 기풍이라는 게 있다. 실리를 좋아하는 사람, 세력을 즐기는 사람, 중반 전투에 강한 사람, 끝내기에 밝은 사람 등등. 어떻게 한 판의 바둑을 두건 각자의 자유지만 그 중에서도 지켜야 할 금도라는 것이 있다. 바둑 둘 때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이미 판세가 기울어졌는데도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고 끝끝내 돌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다. 어쩌다 꼼수를 써 요행히 이기고 의기양양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올해 한국 대통령 후보 등록이 26일로 마감됐다. 10여명의 후보가 등록했지만 실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세 사람뿐이다. 대다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가 지지율 38~39%, 이회창 17~18%, 정동영 13~14%다. 명색이 집권 여당 후보라는 사람이 선거 한 달여를 앞두고 무소속으로 나온 후보에게도 뒤지고 있다는 것은 현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가 어떤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당 인사들은 자신들이 왜 이렇게 인기가 없느냐를 반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국민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민이 노망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김근태 전 열린 우리당 의장의 발언은 그들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집권 여당은 지난 5년간 스스로를 민주화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건국 후 지난 60년을 “불의가 승리한 역사”로 매도하면서도 구악과 조금도 다름없는 부패를 일삼았다. 강남, 부유층, 서울대 출신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가진 자들이 소비하는 길도 투자하는 길도 막아 놨다. 세금을 올려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고 공무원 수를 늘려 기업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빈부격차만 커졌다.
그러면서 청년 실업, 40대 명퇴, 교육대란 등 국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하나도 해결 못했다. 지금 여권 후보인 정동영만 해도 지난 5년간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본인이나 국민 모두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이 왜 지지하지 않느냐고 머리를 긁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 여권이 유일하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이명박 후보가 BBK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잘 먹혀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일단 후보 등록이 이뤄지면 그 사람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거나 기소하는 것이 현행법상 금지돼 있다. 그런 상태에서 검찰이 무슨 발표를 하기도 어렵거니와 한다 해도 정치 공작이라는 반발을 살 것이 뻔하다.
모든 인간은 권력을 오래 쥐면 부패한다. 10년은 그러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평화적 정권 교체의 길을 열어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 집권자의 부패를 막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 달 가까운 BBK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이 내려가지 않고 있는 것은 이 후보가 잘 나서가 아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현 집권층에 신물이 나 있다는 반증이다. 현 집권층은 더 이상 요행수나 꼼수에 기대지 말고 자신들이 왜 국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지를 겸허하게 반성하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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