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네 삶을 가장 밀도 있게 형상화하는 데 천부적인 작가 박완서가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이후 무려 9년 만에 신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펴냈다. 2001년 벽두에 발표하여 그 해 제1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그리움을 위하여」와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의 제목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2006년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힌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하여, 총 9편의 길고 짧은 단편이 이번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묶였다.
환갑진갑 다 지난 여덟 살 아래의 사촌동생이 홀아비 선주를 만나 다 늙어 재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그리움을 위하여」, 노인성 치매로 고통받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며느리의 이야기 「마흔 아홉 살」 등 인간적인 삶, 아름다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단편들은 새로운 노년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나이가 노년이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인이라는 것은 표피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 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 이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이 책에 잘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마술처럼, 읽는 이가 미처 눈치 챌 틈을 주지 않고 한달음에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아차 싶은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이야 말로 한결같은 박완서 문학의 힘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집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노년기를 맞은 주인공들은 암, 중풍 혹은 노인성 치매, 관절염 등에 시달리지만 이런 질병이 그들의 정신을 잠식하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무력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상투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질병마저 현실에 대한 단단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노년의 덕성과 삶에 대한 진한 감수성을 농익게 해주는 계기가 될 따름이다.
중년의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몇몇 작품에서 부각되는 위선과 갈등도 단순한 풍자와 야유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자연스럽게 굴러가도록 만드는 필요악으로 해석된다. 인간의 내밀한 속사정을 내밀하게 까발리고, 복잡 미묘하게 뒤얽힌 인간사의 미세한 갈등마저 명쾌하고 시원스럽게 풀어나가는 그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는 이 시대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아닐까?
이형열 (알라딘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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