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오면 한인사회 곳곳에 연합합창제, 성가제, 음악회 등 많은 행사들이 계획되고 진행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같은 행사의 타이틀에 자선, 또는 사랑 나눔 테마의 소제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아동 돕기, 지구촌 소외된 아동 돕기, 지역사회 장애우 돕기, 국내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등이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입니다. 매우 바람직한 변화요, 현상입니다.
그러나 17년간의 월드비전 사역을 통해 체득한 경험에 의하면 기획 단계에 세웠던 좋은 의도가 정작 본 행사에서는 입술의 성찬이요, 밥상 위의 반찬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허탈함을 금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12월 첫번 토요일 저녁 샌호제 실리콘 밸리에서는 지역 내 한인교회 및 소수민족 교회를 대상으로 한 어린이 찬양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이 행사를 준비하던 10월말께 주최하시는 분들로부터 이번 행사를 월드비전과 함께 지구촌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행사로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고민 끝에 주최하시는 분들의 성실함을 보고, 또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몇 번의 다짐을 받은 후에 ‘월드비전을 통한 지구촌 굶주린 아이들 돕기’라는 타이틀 사용을 허락하고, 당일이 되어 1박2일 일정으로 샌호제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 경비는 월드비전 몫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행사장에서 전 세계 굶주린 아이들의 존재는 단지 행사의 의미를 빛나게 하는 도구일 뿐, 관심 밖에 있는 먼 나라 애물단지일 뿐이었습니다. 현란한 복장, 요란한 화장으로 치장한 어린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 저마다 그동안 연마한 실력을 뽐낼 때, 그 귀여운 자녀들의 대견함에 환호하는 참석자들에게는 화면을 통해 소개된 굶주리는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였는지 모릅니다.
행사의 주제와 프로그램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고, 많은 참가팀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신속한 시간 운영은 충분한 메시지 전달을 사전에 이미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그날 행사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주최측으로부터 어떤 동기부여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 주어진 짧은 시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안, 무대 밑 참석자들의 그 생경한 눈빛들은 심한 초조함과 목마름이 되어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무려 네시간이나 진행된 그 행사에서 단지 5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애틀에서 내려간 저는 맨 앞자리에 앉아 꼼짝 않고 전 프로그램을 다 소화하였습니다. 끝난 후, 다시 본 행사 팸플릿에는 제게는 너무나 익숙한 기아 선상의 아이들이 그 즐거운 축제의 현장에서 또 다른 소외를 맛보며, 예의 그 슬픈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시애틀로 돌아온 아빠에게 딸은 “아빠, 간 일은 잘 됐어? 사람들이 아이들 많이 도왔어?”라고 물었습니다. 주일을 함께 보내주지도 못한 아빠가 텅 빈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로 실망시키기가 싫어서 “그럼, 행사도 좋았고, 거기 계신 분들도 끝내주더라” 하는 말로 딸 애의 환호를 끌어내고는 씁쓸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모든 행사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행사의 기획을 이런 방향으로 준비하시는 분들의 진심이 의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 준비될 때에는 훨씬 더 신중하고, 전문성을 띠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허 참! 도우려고 그랬는데 뜻대로 안됐네?” 하는 말로 어물쩡 넘어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불쌍한 아이들에게 확실한 내일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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