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태어난 날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가 유일한 진리의 근거로 삼고 있는 성경에는 어디에도 예수의 생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기독교가 생겨난 지 300년 가까이 12월 25일은 주요 명절이 아니었다.
이날이 예수의 탄생일로 본격적으로 대접받게 된 것은 콘스탄틴 대제의 즉위 이후다. 312년 로마의 권좌를 놓고 정적과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 콘스탄틴은 전날 밤 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 싸우면 이기리라”는 계시를 받았다. 십자가 배너를 내걸고 나가 자기보다 병력이 2배가 넘는 적군과 싸워 이긴 그는 태양신 숭배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로 정했다.
이날은 당시 로마 달력으로 전통적인 축제일인 동짓날인 동시에 기독교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페르샤의 태양신 미트라의 생일이기도 했다. 콘스탄틴은 이날을 기독교의 명절로 지정함으로써 로마를 구성하고 있던 다양한 세력의 통합을 꾀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이교도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배척 움직임이 있었고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크리스마스는 다시 배척의 대상이 됐다. 옹고집 개신교 집단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해 온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축하하는 것도 금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공식 명절로 인정된 것은 1870년 그랜트 대통령에 와서다.
동짓날을 축제일로 삼은 나라는 로마만이 아니었다. 북유럽에서는 이 때 ‘율’(Yule)이라는 축제를 지냈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율’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미권에서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기간을 ‘율타이드’(Yuletide)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는 동짓날이 기독교 전파 훨씬 전부터 주요 명절의 하나였으며 일본에서는 태양신이자 천황의 조상인 아마테라스가 이날 동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고 믿고 있다. 잉카 문명권에서는 이날이 ‘태양의 축제일’이었으며 인도 각지에서도 이 날 태양신에게 성수를 바쳤다. 이렇게 보면 동지 축제는 서양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 광범위하게 퍼진 관습임을 알 수 있다.
동지 축제는 공간적으로 보편적일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유래 깊은 행사다. 영국의 윌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스톤헨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어진 건축물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기원전 8,000년 전부터 시작돼 기원전 2,100년 경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짓는데 6,00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수십 개의 바위로 만들어져 있으며 원형 모양으로 이뤄진 이 구조물은 그 중심축이 동짓날 해가 지는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한 개의 무게가 5톤에 달하는 이 바위들은 스톤헨지에서 150 마일 떨어진 웨일스 지방에서 운반돼 온 것으로 거기 들어간 정력을 생각하면 고대인들이 동지를 얼마나 중요시 했나 짐작할 수 있다.
해는 나날이 짧아져 가고 날씨는 추워지고 먹을 것은 떨어져 가고 절망뿐인 한겨울. 동지를 기점으로 바닥을 치고 나서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은 고대인들에게 희망이자 부활이자 기적 그 자체였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이날을 ‘꺾이지 않는 태양의 날’로 부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동짓날의 태양은 고통 다음에는 기쁨이, 빈곤 다음에는 풍요가, 절망 다음에는 희망이, 죽음 다음에는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깊은 진리를 인류에게 처음 가르쳐 준 스승이다.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가냘프게 출발한 인류는 동지의 약속에 의지해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섰다. 크리스마스가 세계인의 보편적인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생명과 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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