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라 불리는 서양장기는 한국 사람에게 친숙한 중국 장기와 닮아 있다. 맨 앞에 졸들이 늘어서 왕과 장수를 보호하며, 잡히면 승부가 끝나는 왕은 제일 중요하면서도 힘이 없는 점도 같다. 직진만 하는 체스의 ‘루크’(rook)는 차와 비슷하고 날일자로 건너뛰는 ‘나이트’(knight)는 마와 별 차이가 없다. 이처럼 두 게임이 비슷한 이유를 학자들은 페르샤에서 찾는다. 페르샤에서 발명된 이 게임의 조상이 서쪽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체스고 동쪽으로 간 것이 장기라는 것이다.
페르샤에서 나온 게임 가운데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있다. 포커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포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포커 전문 TV 채널까지 생겼다. 여러 종류 포커 중 묘미가 있는 것이 ‘하이로 포커’다. 가장 패가 좋은 사람이 독식하는 일반 포커와는 달리 이 게임에서는 가장 좋은 패를 든 사람과 가장 나쁜 패를 든 사람이 반씩 나눠 먹게 돼 있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요령은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쪽으로 거는 것이다. 자기 패가 좋더라도 사람들이 다 그 쪽으로 몰리면 이길 확률은 작아진다. 반대로 별 볼일 없는 패를 들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이 쪽으로 가면 자동으로 이긴다.
투자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어떤 분야든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몰려가는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만큼 소문이 났다는 것은 이미 투자할만한 사람은 다 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살만한 사람이 다 산 이상 남은 일은 가격이 떨어지는 일뿐이다.
반대로 “그 분야는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올 때는 한 번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팔만한 사람은 다 판 상태이기 때문에 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상식과 반대로 가는 투자를 ‘역발상의 투자’(contrarian investing)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성공적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 부류다.
이 원리는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태생적으로 쉽지 않다. 거기다 많은 사람이 가는 식당, 많은 사람이 사는 차가 좋다는 것을 살면서 경험했기 때문에 남이 하는 대로 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 이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투자에 관한 깊은 지식과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갖춘 사람은 극소수다. 보통 사람이 성공적인 투자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2000년 하이텍 주식이 극도로 과열됐을 때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절대 다수의 낙관론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2005년 주택 경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타임지는 ‘홈 스위트 홈’을 표지 기사로 다루고 어째서 이번만은 거품 우려가 기우인가를 장황하게 썼다.
그 후 2년 반이 지난 지금 세계 신문 지면은 미 주택 시장에 관한 비관적인 기사로 덮여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주택 위기’ ‘서브프라임 쓰나미’ ‘미국 발 세계 불황’ 등등. 그러나 작년 미 신축 주택 경기가 최악이라는 기사가 나온 28일 주택 건설 회사지수는 오히려 폭등했다. 1년 앞의 주택 경기를 예고하는 이 지수는 올 들어 최저점에서 30% 가까이 올랐다.
이것만으로 주택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쁜 경기는 항상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 머리 속에서 근거 없는 낙관론이 사라지고 그 동안 주택 가격이 버블이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것은 주택 시장이 정상을 되찾고 있다는 신호다.
모든 투자 전망은 꼭지에 가까울수록 밝고 바닥에 접근할수록 어둡다. 주택에 관한 비관론이 극에 달할 때, 그 때가 주택 경기 회복 직전의 모습이다. 90년 불황, 92년 폭동, 94년 지진 직후의 LA가 그랬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발자국씩 주택 경기가 그 지점에 접근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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