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 환경과 삶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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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버클리대의 생태학자 로버트 더들리는 파나마의 열대림에서 이상한 개미떼를 보았다. 빨갛게 변색된 배를 높이 쳐든 개미들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잘 익은 체리 열매 같았다. 새들이 와서 열매인줄 알고 연신 쪼아먹고 있었다.
새들은 보통 개미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열대개미들의 반격도 거센데다 맛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들이 쪼아먹는 이유를 알곤 더들리는 깜짝 놀랐다. 개미 뱃속에 기생충 알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기생충들이 개미뱃속에 들어가 빨갛게 변색시키고, 이를 열매로 착각한 새들이 먹게끔 유도해 씨를 멀리 퍼뜨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자신보다 고등동물을 두 종류나 이용한 기생충의 영특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최근 다람쥐가 뱀허물을 몸에 바르는 동영상이 큰 화제다. 아예 뱀이 떠난 둥지에 뒹굴고 뱀허물을 씹어 먹기 까지 한다. 이런 행동은 방어력이 약한 암컷들과 새끼 다람쥐들에 두드러졌다. 알고 보니 방울뱀 냄새를 풍겨 다른 뱀들이 다람쥐 굴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체득한 그들의 기발한 생존전략인 것이다.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치열하다. 주로 먹히는 작은 동물들 뿐 아니라 맹수들의 생존전략도 치열하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북극 흰곰들도 뛰어난 수영선수들이다. 큰 덩치가 둔해 보이지만 앞발을 노 같이 젓고 넓적한 뒷다리를 방향키처럼 유연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몇 시간동안 수십 마일을 거뜬히 헤엄친다. 수영할 땐 콧구멍까지 자연스레 닫힌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하 4-50도 혹한에도 견디게끔 지방층이 11센티미터가 넘는다. 이 두터운 지방 때문에 혹한에도 사람과 같은 체온 98.6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정말 추우면 눈 구덩이를 파고 코만 묻고 잔다. 까만 코와 작은 귀, 짧은 꼬리만 감싸면 열 발산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몸이 쉽게 과열돼 오래 뛰질 못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북극곰들이 늘 느긋한 양반처럼 걷는 것도 일종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북극 흰곰들의 서식처는 바다에 떠다니는 얼음판이다. 유빙(遊氷)위에 새끼를 낳고 살면서 물개 사냥으로 살아온 것이다. 약 25,000 마리로 추산되는 이들은 수 천만 년 동안 자연에 순응하는 생존전략을 익히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이들 서식지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덮쳐 북극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그린랜드의 만년설이 거의 190억 톤이나 녹았다고 한다. 이 추세면 2050년까지 북극 얼음이 다 녹아버린다는 게다. 그때까지 북극곰의 2/3가 몰살할 것이란 예측이다. 벌써 익사하는 흰곰들이 늘고 있다. 공해의 악영향이 하도 빨리 진전돼 북극곰들이 미처 대응할 겨를도 없이 죽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실망스런 것은 부시행정부의 근시안적 환경정책이다. 북극곰들을 멸종위기 동물법으로 보호하자는 법령 상정 시효기간을 지난달 일부러 넘겨버렸다. 이는 흰곰 서식지인 알래스카 추크치(Chukchi) 해의 원유채굴권을 부시 임기 내에 석유재벌에 넘겨주기 위한 정치적 술수란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구 온난화가 인재(人災)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세계 174개국이 참여한 쿄토의정서 서명에도 반대했다. 작년엔 내무부 고위 관리가 생태계 실태조사서를 고의로 조작했다가 파면되기까지 했다. 한 시대 정부시책이 수많은 생물들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예사 책임이 아니다.
흰곰들이 먹이를 노릴 때 눈에 띄는 까만 코를 손으로 가린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이 아닌 우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먼 훗날 누가 알랴. 흰곰들이 코 가리고 사냥하는 생존전략에 실패해 멸종되었다는 허위 보고서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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