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웬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나로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요즈음 나는 결혼 10년만에 얻은 아들 녀석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아들의 울음소리마저 달콤한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처럼 들린다. 가끔 외출 길에 녀석의 장난감을 사가지고 돌아올 때면, 내 두 다리는 수퍼맨이 된 듯 빨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도, 아내도, 잠 잘 시간까지 쪼개가며, 아이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이 시간은 세상 무엇보다 행복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5개월 남짓 되어가는 아들 녀석이 나를 철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부모들처럼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배려하고 희생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와 아내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2008년이 시작되면서 여러 학부모들이 상담전화를 걸어왔다. 새해를 맞아 자녀들의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학부모도 있고, 잠시 중단했던 레슨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엄마들의 전화도 있었다.
음악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신이 준 고귀한 선물이다. 그런 선물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은, 음악을 하는 내겐 늘 반갑다.
하지만 그런 전화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음악은 너무 좋아하는데, 연습하는 것을 싫어해서 피아노를 그만 두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려니까 특별활동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시키려구요” “애가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까 걱정이 돼서요. 뭘 좀 시켜볼까 하는데, 피아노가 제일 만만하지 싶어서…”
음악이 대학입시의 수단이 되고, 아이의 시간 때우기 용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부모도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못 배운 것이 한이 돼서, 나중에 부모 원망 안하게 하려면 억지로라도 시켜보려고요”
아이가 아닌 부모의 발상으로 시작된 결정이다. 이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악기를 하고 싶으냐고 물어 보셨나요?” “음악 공부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고 계시죠?”
농구를 하고 싶은 아이에게, 자식과 필드에 나가는 것이 꿈이라며 골프를 가르치는 아버지, 드럼을 연주하고 싶은 아이에게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고집하는 어머니… 진정 자녀를 위하는 부모일까 생각해 본다.
자녀와 부모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인격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부모의 마음이 아닌,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진정한 가르침 아닐까?
지난 15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앞으로도 남의 집 귀한 자녀들을 가르칠 것이다. 열정과 책임감으로 열심히 가르치면서 늘 고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강요나 무거운 책임감이 되지 않도록 그들이 정말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음악과 관련한 관심거리를 찾아내고, 동기를 부여해 주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누군가는 말했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철이 들고, 남자는 그 아이가 아이를 낳을 때쯤 철이 든다고… 나는 아직도 철이 들고 있는 중이다. 내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 나의 학생이 진정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말이다.
앤드루 박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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