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군수 참모부장(13)
내가 군수 참모 부장으로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기억난다.
나는 방대한 군원 예산을 썼다기보다는 미국 장교들과 각 기술감들에 의해 진행되던 군수 업무를 계속하는 책임의 자리에서 밀리고 있었다 함이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형식적으로 군원 신청의 종합 서류에 나의 서명이 요구돼 왔다. 그러나 나는 군원 신청에 있어서 나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자부심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책임자로 있던 4년간 군원 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아니했다. 답답했던 고문관들은 각 기술감의 신청 서명으로 나의 서명을 대신한 것 같다. 특히 미 8군의 군수 물자 잉여분이 한국군에 이양되면서 그것이 군원으로 계산되었고 또한 처음으로 군원에 입각한 일선 막사 건축에 있어 각 막사의 기준이 너무 협소하고 욕실이 계산되지 못함을 불평했으나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함도 나의 심기를 상하게 하였다.
하루는 김정렬 국방장관의 긴급호출이 있었다. 내용인즉 미 국방 차관보가 부산 차량창을 시찰하면서 일선에서 보내온 폐차량의 부속품이 제거돼 있음을 보고 국방장관에게 불평을 제기하였고, 김 장관은 나에게 대신 설명을 시키기로 한 듯하다. 미 차관보의 이름은 기억치 못한다. 그를 김 장관실에서 만났다. 나는 내가 군원 문제에 대해 불평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나는 평소의 군원 업무에 대한 불평을 토하기 시작함으로 그에 대한 사과 대신 언쟁이 붙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김 장관이었다. 믿던 나로 인해 손님에게 그의 입장만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도 자기 불평의 정당성보다는 군원에 대한 불평으로 돌아올 줄은 상상치 못한 듯하다. 그러나 나는 항상 우리나라 경제 여건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값싸게 군대 전투력만을 이용하려는 군사 원조는 소홀한 민간 경제 원조를 보충키 위해 암암리에 군부에서 민간 부분으로 흘러 나간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차량 부속품만 해도 그 결과라고 보고 있었다. 많은 군복이 시장에 흘러 나갔다. 민간 자동차의 운행은 군에서 흘러간 부속품의 덕이요, 버스도, 불고기 판도 군에서 흘러 나간 빈 휘발유통이나 탄피의 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군사 원조의 일부가 민간 원조로 전환되고 있었다.
나는 거의 매해 다도해를 왕복하는 배가 침몰하며 지리산을 넘는 버스가 전복되는 뉴스에 접하면서 그의 원인이 배나 버스의 정비가 소홀함에 기인하며 그 원인은 낡은 부속품에 의존하는 경제적 취약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내무부 직원에게 인간의 생명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음을 항의하였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배고프고 밥 먹기 위한 일반의 욕망을 무시하는 이상론밖에 되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여하튼 한국에서는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암묵적으로 생명의 존귀성에 위배되는 소극적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경향은 풍부해진 오늘이라고 크게 향상된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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