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다. 처음부터 질 생각으로 시합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승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평소 자기 기량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뿐더러 즐거움이나 자기 개발 같은 진정한 게임의 목적은 사라져 버린다. 변칙수나 반칙, 불복 등이 터져 나오며 싸움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추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어권에서는 최선을 다 해 싸우고 대세가 명백하게 기울면 깨끗이 패배를 시인하는 사람을 ‘좋은 패자’(good loser)라고 부른다. 반면 판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데도 온갖 꼼수와 심술을 부리면서 끝까지 억지를 쓰는 사람은 ‘나쁜 패자’(bad loser)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그 사회가 ‘좋은 패자’를 길러내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 툭 하면 치고받고 싸우고 절대 승복하지 않는 한국 정치만 보고 살다 미국에 와 엊그제까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후보들이 일단 선거 결과가 나오면 깨끗이 승복하는 정치 풍토에 놀란 사람은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운동 시합과 교내 선거 등을 통해 훈련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지난 200년간 미국 민주주의가 중단 없이 발전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지난 주말 열린 민주당 예선은 버락 오바마의 완승으로 끝났다. 워싱턴과 네브라스카, 루이지애나와 메인이 모두 오바마의 승리로 돌아간 것은 물론이고 일부 주들은 더블 스코어로 격차가 벌어졌다. 오바마의 말대로 “서부 해안에서 남부 해안, 동부 해안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주들”이 모두 오바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2일 벌어질 워싱턴DC와 메릴랜드, 버지니아에서도 오바마의 승리가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주 선거 결과는 22대 12로 오바마의 압승이며 총 유효표 수나 대의원 수에서도 앞서 갈 것이다. 또한 올 19일로 예정돼 있는 하와이와 위스콘신 예선에서도 오바마가 이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유일한 희망은 3월 4일 있을 오하이오와 텍사스 예선이다. 오하이오는 힐러리 지지 계층인 저소득 백인들이, 텍사스는 라티노 유권자가 다수인데다 대의원 수도 많아 역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2월 한 달 동안 오바마의 승리가 계속되면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플로리다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군소 주에서 계속 진 후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무너진 루디 줄리아니가 반면교사다.
그러나 여기서 지더라도 힐러리가 순순히 항복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표를 던질 수 있는 800명의 민주당 고위 인사로 구성된 수퍼 대의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역 선거로는 누구도 지명에 필요한 2,025명 대의원 확보가 어렵고 그렇게 될 경우 이들 수퍼 대의원이 승부를 가를 텐데 그 때는 당내 기반이 확고한 힐러리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당규 위반으로 무효 판정을 받은 미시건과 플로리다 선거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힐러리 진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300여 명에 달하는 이들 대의원이 복권되면 이 두 경선의 승자인 힐러리가 유리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수퍼 대의원들이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밀실 협상을 통해 지역 경선 패자를 민주당 후보로 뽑거나 이미 무효 처리된 두 주 대의원을 부활시키려 할 경우 8월 덴버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올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지기 어려운 싸움이다. 등록 유권자 수, 정치 헌금액, 투표 참여도에서 모두 공화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존 매케인은 공화당 내에서 지지 기반이 약할뿐더러 집권당 재집권 여부를 결정하는 경기도 나쁘다. 변수는 민주당의 내분으로 판이 깨져 공화당이 어부지리를 취하는 것이다.
지역 경선의 승자가 누가 됐든 수퍼 대의원들은 그에게 표를 몰아주고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이 걸어야 할 정도라 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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