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김종오 장군의 호의
미국에 도착한 해 여름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내가 한국에서 속했던 미 1집단 군단장 라이언 중장이 미 국내군 6군 사령관으로 부임되어 있었고 그의 사령부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 Presideo에 있었다. 그가 사령부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있어 나의 매부인 강영훈 장군(애리조나 대학)과 1군 사령관이었던 이한림 장군(산호세에서 유학중)을 같이 초대했다고 들었다.
양인 공히 나 보다 1년 전에 미 서부지역에 유학 신분으로 와있었다. 우리는 그가 베풀어준 만찬에 참석하며 사령부내 귀빈 숙소에 묵게 되었으며 다음날 그의 전용 선박으로 맑고 푸른 샌프란시스코 만을 함께 유람하며 서로의 회포를 풀며 모처럼의 객지 생활의 고독을 달랬다. 라이언 장군의 호의로 수차례에 걸친 시애틀 지역 포트 로턴 지역 사령관 맥골드릭 소장의 초대를 받아 시애틀 유지들을 만나며 그들과 교유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내가 시애틀에 있는 동안 시애틀 대학을 통해 제주도에 평화봉사단 요원들을 보내는 사업의 고문 역을 맡게 된 것도 이 교우에서 이루어졌다.
62년 8월 말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 육군 참모총장 김종오 대장이 미국 군사 시설 방문길에 시애틀을 들르겠다는 소식을 맥골드릭 장군을 통해 받았다. 당시 시애틀에서는 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어 그를 견학차 들리겠다는 요지였다. 그는 9월 1일 시애틀에 도착하였고 다음날 워싱턴으로 향했다. 그의 시애틀 방문 이유는 세계박람회 견학이지만 실은 나를 만나보는 것이 목적이라 하였다.
나는 김 총장의 우정에 감사하였고 그가 직 간접적으로 나를 위해 걱정해 준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하여 사의를 표했다. 그 당시 혁명 정부에서 거세당한 나를 만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물며 참모총장의 지위는 조심성이 필요한 자리였다. 나는 그와 같이 박람회 장소를 돌아보고 지역사령관의 저녁 초대에도 임석했다. 김희덕 소장이 그를 수행하였다.
김 장군도 내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의 하나였다. 김희덕 장군은 육군 군수학교를 창설, 육군의 군수제도 개혁을 위한 제도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육군의 군수 제도 운영 향상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나의 군수 제도개혁을 위한 이론을 제공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육군 군수 참모부 차장이었다.
또한 육군 차석 무관 박보희 중령이 워싱턴에서 시애틀까지 김 총장을 마중 나와 수행하였다. 내가 워싱턴으로 유학감에 따라 많은 옛 부하들이 지나가며 나를 만나기를 피하였다. 내가 너그럽게 이해하여야 할 일이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뜻이 영접해주고 돌봐준 윤승국 김필상 국방무관들에게 지금도 감사를 금지 못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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