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목사/MJ 크리스찬 문학교실 대표)
지금까지 우리 문학은 방계(Branching-Extension) 문학의 일환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것은 문학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 견해임을 지적하였다.
우리가 어느 땅, 어느 곳에 살든 우리의 모국어로 그곳의 삶을 작품화 하였다면 그것은 당당한 대한민국의 문학작품이 되는 것이요, 결단코 교포문학이니 이민문학이니 하는 저변성 문학 대접을 받을 일이 아니란 뜻이다.(본국의 큰 문학상의 작품을 모집하는데 우리 해외동포들의 작품도 당당히 끼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고, 실제 큼직큼직한 문학상을 우리 교포분들이 심심찮게 거머쥐고 있지 아니한가)
문제는 모국어로 글을 써서 발표할 때, 우리는 좀 더 신중하여야 하며 문제의식을 갖고 글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대체로 신문, 잡지에 발표되는 글을 보면 너무 가볍고 너무 쉽다.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글의 주된 내용이 너무 예화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은 대체로 종교인들의 작품 가운데 자주 발견되는 것인데 독자로 하여금 너무 무책임하다는 느낌
도 갖게 한다.얼마 전,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미증유의 재앙을 미국은 경험했다. 아직 물에 떠도는 시체도 모두 거두지 못한 때에 어느 종교인은 이런 글을 발표했다.
<역사를 멀리 볼 때 우리 인류는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며 살아왔다. 대부분 창조적인 것은 재난 위에서 탄생한다. 미국의 국가(國歌)도 전쟁을 치루며 만들어졌고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있은 후 거기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이런 면에서 이번 쓰나미의 재앙도 멀리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 같은 것이다.>역사를 멀리 보고 쓴 심오한(?) 글이라 할 말은 없지만 무책임한 글이란 평(評)도 피해갈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우리 민족의 문학적 재능을 믿는다. 그러니 우리 교포들의 자녀 가운데 위대한 영(미) 문학자도 나와야 되고, 영문작품도 나와야 한다. 그리고 모국어가 편한 세대 가운데 빛나는 우리 작품도 많이 생산되기를 바란다.진정한 민족의 중흥은 우리의 문학언어를 되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거늘 어찌 ‘잘 먹고 잘 사는 일’만이 백성의 구호가 되어있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우리의 언어, 우리의 정신, 우리 문화로 정체성(正體性)을 확보한 연후에야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겨두자.
그런데 지금 한국은 영어 열기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무언가 모르게 나라의 근본을 찾는 일이 거꾸로(逆天)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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