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 김경혜씨 재활 스토리
수년간 가정폭력을 받아 온 한 한인여성이 버지니아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키워나가고 있다.
지역 신문인 ‘커넥션’은 최근 ‘한 여성, 학대받는 결혼에서 탈출’(Woman emerges from abusive Marriage)이라는 제하로 한인 여성 김경해(Kyung Hae Kim) 씨의 재활 스토리를 소개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던 김 씨는 1993년 더 공부하기 위해 뉴욕에 왔다가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세 자녀까지 두었다.
버지니아 리치몬드로 이주해 살던 김 씨는 결혼 이후 갈수록 심해지는 남편의 정신적, 신체적 학대는 물론 외출마저 철저히 감시를 받아 오다 두 번의 가출 끝에 지난 2004년 훼어팩스 카운티의 가정폭력피해자 대피소로 탈출에 성공했다.
김 씨의 영주권 수속마저 망쳐 버린 남편과 살면서 자녀들은 아버지 모습만 보이면 다른 곳으로 숨는 등 가족 전체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온 김 씨는 “집은 사실상 감옥이었다”며 고되고 힘든 결혼 생활을 회상했다.
학대가 이어지던 어느 날 김 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자녀들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쉘터로 탈출했으나 그 쉘터는 불과 일주일 분량의 음식만을 제공했다.
쉘터에서 지내던 김 씨는 일자리를 구하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영주권이 없어 구직이 어려웠고 돈마저 떨어졌으나 쉘터에서도 나올 수 밖에 없어 결국 자녀들과 함께 미국인 남편에게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학대는 이전보다 더욱 심해졌고 견디다 못한 김 씨는 또다시 탈출을 결심, 2004년 택시 2대를 불러 아이들과 함께 아무런 연고도 없는 훼어팩스 카운티로 무작정 탈출, ‘베다니 하우스’라는 쉘터로 들어갔다.
쉘터에 머물던 김 씨는 훼어팩스 카운티 소재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노바코’(NOVACO)의 도움으로 2005년 제정된 여성폭력 방지법에 근거해 이듬해인 2006년에서야 영주권을 받았다.
김 씨는 또 노바코가 제공하는 통역, 꽃꽂이 및 ESL 코스 등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한편 작문 클래스 등도 듣고 있다.
그는 현재 자녀들과 콘도에 살면서 노인 간호 보조사로 일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 씨는 커넥션 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쿨버스 운전사가 돼 내 집을 갖고 싶다”며 “또한 경찰서나 병원에서 (나와 같이) 학대당하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한국어 통역, 꽃꽂이 등의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 씨는 “이제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이상 남이 해 주기를 바라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보려 합니다”라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박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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