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란 단어는 집 ‘가’자 뒤에 붙은 한자에 따라 집안을 다스린다는 뜻과 한 가족이 같이 사는 집이란 뜻으로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가정은 어느 쪽에 속해 있는가.
고향친구 향이와 나는 결혼 후 서울에서 한 동네에서 살았다. 향이는 3대 독자와 결혼해서 5년 동안 딸 셋을 낳았는데 나는 임신을 못해서 그녀로부터 늘 공밥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내가 늦게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아 향이 남편으로부터 홈런만 치는 여자라는 칭찬을 들어가며 또 아들을 낳아 삼형제를 두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손자를 기다리던 노인들로부터 ‘씨’받을 여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딸 엄마는 비행기를 타고 아들 엄마는 버스를 탄다는 말이 나돌더니 진짜 딸 가진 엄마들이 아들 부럽지 않다며 위세 당당해졌다.
우리 어머니가 늘 딸 여섯보다 아들 하나 키우기가 더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아들 셋 키우기는 정말 힘겨웠다.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끄러웠고 위험스런 장난에다 방마다 걸어둔 충충한 옷들이며 너무 어질러서 집안을 예쁘게 꾸며보지 못했다.
게다가 무뚝뚝한 경상도 아빠를 보며 자란 아들들은 남자와 집안일은 무관한 줄 알고 있었다. 참다못해 맏이가 중학생이던 어느 어머니 날 아들에게 늙어 버스만 타게 될 내 신세타령을 했더니 “엄마 걱정 마. 나는 비행기 일등석으로 태워 줄 거야”라며 나를 달래주었다. 맏이는 그날 내 한탄에 자극을 받고 명심했는지 지금 그 약속을 확실히 지키고 있다.
요즘은 딸들이 더 빨리 생활안정을 하고 부모를 잘 도와줘서 상대적으로 기대감에 못 미치는 아들의 부모들은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한 아들을 해외동포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고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부자아들은 장모아들이고 못난 아들만 내 아들이라던 어느 칼럼리스트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렇다. 아들을 낳아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쳤으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고, 사위 돈 아니면 못 사는 장모 구제하는 일도 좋은 일이고, 남들은 어려운 사람들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남의 나라까지 가서 희생하고 있는데 못난 제 아들 위해 봉사하는 일이 뭐 그리 억울하겠는가. 요즘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친구가 자기는 금메달이고 나는 목메달이라며 놀린다. 그동안 당해온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반격이겠지만 그런 풍자와 조크도 모자라 이제 ‘아들 셋이 있는 사람은 불쌍하다’는 말이 일간지 첫 페이지 기사로 등단하니 아들은 낳은 부모한테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인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이 정말 걱정스럽다.
남자들이 얼마나 권위적이었으면, 또 아들 가진 유세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이 지경까지 되었겠는가? 예전에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는 구호를 외친 때가 있었다. 딸 둘로 산아제한 한 사람들이 ‘아들’하고 자기 아들을 부르는 친구들 꼴이 보기 싫어서 딸딸이 클럽을 만들었다. 그들의 세상이 온 것인가.
요즘은 총각이 효자면 장가를 못가고, 결혼한 효자들은 마마보이라고 놀림을 받으니 효녀는 칭찬이고 효자라는 말은 욕이 된다는 말이다. 누구를 탓하랴. 많은 젊은 아내들이 내 돈은 내 돈이고 남편 돈도 내 돈으로 알고, 또 전문직 부부들은 아예 은행 통장도 따로 갖고 각자 자기 부모를 챙기면서도 사위는 장모에게 각별해야 한다니, 이 무슨 동등권을 외치는 자들의 불공평한 처사며 이게 어찌 가정이며 가족인가.
가정의 달도 없고 어버이날이 없었을 때도 가정에는 사랑으로 얽힌 위계질서가 있었다. 아들 낳은 사람 없이 귀여운 딸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또 그 딸들은 딸만 낳을까?
여자가 어머니가 되어도 자식의 아버지를 존중할 줄 모르는 세대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딸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도 좋다. 그러나 치사한 이기주의를 웃어넘길 수만 없다. 속 끓이고 있는 아들의 어머니들을 모아 아들 클럽이나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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