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백영옥 지음
선정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던 책 ‘스타일’은 고료가 무려 1억이나 되는 세계문학상의 제 4회 수상작이다. 세계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인 ‘미실’을 빼고 ‘아내가 결혼했다’ ‘슬롯’등 모두 재미가 있었기에 기대되는 작품이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계문학상은 아마 재미가 없으면 수상대상에서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이라도 있나 보다. 백영옥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스타일’에서 그녀의 글은 원숙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매끄럽고 재기가 넘치며, 철저한 취재를 거친 듯 현장감이 넘쳤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자라나 강남을 터전으로 살아나가는 소위 ‘강남키드’인 주인공의 직업은 잡지사 8년차 피처(특집이라고 하면 촌스러워진다)팀 기자. 콧대 높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화배우 정시연을 취재해 장장 30페이지나 되는 특집을 메워야 하는데 섭외부터 사진촬영, 인터뷰까지 지뢰밭 투성이다.
한편 주인공이 일하는 잡지 ‘A’에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레스토랑 탐방기를 써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닥터 레스토랑이라는 정체불명의 필자가 있는데 주인공은 이 필자의 정체를 밝히는 일까지 떠맡게 되지만 도대체 실명은 커녕 나이도 주소도 성별도 알 수가 없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주인공의 세세한 일상을 스케치하면서도 ‘미션 임파서블’처럼 느껴지는 취재기가 선 굵게 그려지고, 드디어 예고 없이 주인공에게 찾아온 사랑은 헐리웃 영화 스타일의 멋진 반전이 부럽지 않다. 단언컨데 이 작품은 머지않은 시기에 영화화가 결정되리라고 본다.
농촌을 떠나와 시골에 향수를 가지고, 구질구질한 여자의 일생이나 풀리지 않는 가난과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혹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비판하고 항거하다 일생을 불살라버린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DNA를 가진듯한 70년대 강남출생 주인공의 삶과 사랑은 이미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에르메스 백과 마놀로 블라닉 슈즈에 대한 욕망과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착한 욕망 사이를 넘나드는 패션지 8년차 여기자 이서정의 마감에 찌들린 삶을 들여다보면서, 후기 자본주의의 한없는 욕망이 명품이라는 ‘물신’을 통해 형상화되는 과정에 지구인 모두가 동참하고 있고 단지 그들은 조금 앞서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자조적일까.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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