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을 추모하며…
‘샤넬의 형식, 디올의 화려함과 풍부함, 그리고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위트’를 겸비한 천재 디자이너. 20세기 패션 아이콘 중 하나인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사진)을 일컫는 수식어이다. ‘YSL’이란 모노그램 로고를 유행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알제리 태생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 2008)이 지난 1일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1세.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왔던 걸로 전해졌다. 크리스찬 디올, 코코 샤넬과 함께 프랑스를 세계 패션산업의 중심지로 만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별세로 인해 이번 주 내내 패션계는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출신 천재 디자이너… 1953년 디올 입사 승승장구
1962년 브랜드 출범 유행을 초월하는 패션산업의 얼굴로
퐁피두센터 패션쇼에서 캣 워크를 선보였던 칼라 부르니 현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
1953년 크리스찬 디올에 입사한 후 승승장구해 1957년 크리스찬 디올 디자이너가 됐다. 평소 디올을 스승으로 칭하며 “나에게 예술의 기초를 가르쳤다”고 회상하곤 했던 이브 생 로랑은 알제리 전쟁으로 군에 징집되면서 디올과 헤어져야 했다.
1962년 평생의 동반자 피에르 베르제와 오트 쿠틔르 브랜드 ‘이브 생 로랑’을 출범시켰고 이브 생 로랑은 ‘의상의 완전한 침묵’을 모토로 인체와 의류 사이의 조화를 추구해 왔다. 특히 ‘페미닌 엘레강스’의 대명사로 유행을 초월하는 그의 패션은 패션산업의 얼굴을 바꾸었으며, 기성복과 향수 등을 선보인 ‘리브 고시’(Rive Gauche) 브랜드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옮겨놓은 몬드리안 룩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아이템을 여성복으로 옮겨와 패션의 혁명을 일으킨 인물. 1966년 여성정장 바지와 가죽 재킷을 처음 선보였고, 남성의 턱시도를 본 따 만든 여성 턱시도 ‘르 스모킹’과 아프리카에서 모티브를 딴 ‘사파리 룩’, 좁은 어깨에서 시작해 아래로 풍성하게 퍼지는 무릎길이의 ‘트라페즈 라인’,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옮겨놓은 몬드리안 룩, 여성의 얼굴을 기하학적인 무늬로 사용한 팝 아트 드레스는 참신함 그 자체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살아있는 패션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그의 개인전을 열어줬으며, 흑인 모델을 최초로 무대에 세운 패션계 거장의 마지막 무대, 2002년 1월 파리 퐁피두센터 패션쇼 무대로 이브 생 로랑의 추모물결에 동참해 보자.
<글 하은선 기자·사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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