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갓난아기였을 때 저는 매일 아기 치닥거리와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쩔쩔 매었습니다. 남편은 아기가 생긴 후부터는 우리 집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아기는 저를 통해서만이 살 수 있으니 우선 그 애기를 돌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뿐 아니라 독일식은 항상 쇼룸처럼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하니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하자니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활발한 성격이 아니니 가정적인 여자로 생각했는데 이게 왠일인가. 살림을 잘하는 여자에 속하지도 않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 한 식구가 더 생긴 것에 불과한데 모든 생활이 바뀌어야 했습니다. 우리 둘 만이었을 때는 야, 나가 먹자고 하면 15분도 안되어 옷을 입고 나갔지만 그 때부터는 아기를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을 미리 구해야 했습니다. 바구니에 담아 다니기도 했지만 외출이 옛날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또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음식 준비를 매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이구, 오늘 저녁엔 뭘 만들어야 옳아? 하고 입버릇처럼 자주 말씀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해야 하는 것을 이렇게 몰라서는 안되겠는데...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아무리 음식 투정을 안 하는 사람이고 콜드 컷을 많이 먹지만 어떤 때는 스테이크나 혹은 스파게티를 삶아 병에 든 소스를 부어준다 한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가끔 불고기를 만들기도 하고 돼지고기에 고추장 양념을 하여 굽기도 하고 두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만 결혼 전에 한식집에 가서 씩씩 하게 먹어 잘 됐구나하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먹는 것은 괜찮지만 마늘 냄새가 심해서 자주 먹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먹고 자란 것이 다르니 우리에게는 이 음식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냉장고에서 무얼 찾다가 이게 뭐야?하고 물었습니다.
어, 그거 된장이야. 콩으로 만든 것인데 찌개라고 스튜 비슷한 음식 만들 때 넣는 것이야라고 대답하고는 제가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보니 돌아보니 남편이 벌러덩 부엌 바닥에 누워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왠일이야? 깜짝 놀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까이 가 물었습니다. 어어(신음 소리를 내며), 냄새가 너무 독해서...
저는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우리 음식이 얼마나 냄새도 강하고 맛이 짙은지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직장을 갖지 않고 집안을 돌보는 주부를 논다고 하지 않습니까? 놀다니요! 청소, 빨래, 장보기서부터 하루 종일 쉴 새가 거의 없습니다. 집이나 치우고 애를 보는 단조로운 일이 밖에 나가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 거 아셔요? 물론 자라는 아기가 가져다주는 기쁨이야 잴 수도 없는 일이지만요. 애써 청소하고 빨래해서 정리하면 아니, 마루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 하고 알아주나요? 아무 표가 나지 않고 적당히 해 놓으면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게 집안 일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 어머니처럼 오늘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 하고 궁리해야 되는 제 자신을 보자 우선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으면서 나를 발전시킬 일, 매일 준비해야 하는 요리를 배우는 것이 너무나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리를 잘 하면 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온 식구가 좋은 것이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식이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과 주변의 요리 학원을 물색했습니다. 이왕이면 서양 요리를 좀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에서 한 2시간 반 정도 북쪽으로 가야 하는 허드슨 강변의 요리 학교(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는 정규 대학같이 1, 2 학년 때 교양 과목을 들어야 하고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아이까지 있으면서 그것을 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맨하탄의 뉴욕요리학원 (New York Restaurant School)을 택했습니다. 여름 석 달 동안 하루에 8시간씩 수업을 들어야 하는 축소된 코스였습니다.
들어 보지도 못한 양념에서부터, 스프의 근본인 닭 국물을 어떻게 만들고 또 그것을 이용해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가...... 어휴,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수퍼마켓이나 야채 가게에서 파는 이상하게 생긴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각종 음식을 살펴보느라 수많은 시간을 낭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요리에서 재료가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간을 어느 정도 하고 언제 하느냐에 따라 다르더군요. 요리를 유난히 잘 하시던 외할머니께서, 요리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간을 잘 하는 것이다 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거기다가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불의 강약에 따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음식이 되기도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음식의 질감에 따라 서로 어울리는 음식이 있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 색채도 생각해야 되거든요.
그러니 요리는 그야말로 색채, 모양, 맛이 모두 어울려야 하는 아주 짧은 시간만 존재하는 소규모의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판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귀로 들으며 지지고 냄새를 맡아 구미를 돋우고 눈으로 보아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자극을 받고 그리고 혀에 닿아 짜릿한 맛을 느껴야 하니 그것만큼 우리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요리는 저에게 눈이 번쩍 뜨이게 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매일 배우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야, 내가 벌써 옛날에 시작했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배우면 배울수록 저는 누구보다 잘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 후부터는 배운 것을 시험해 보는 일이 하나 더 겹쳐서 그러지 않아도 꿈지럭 거리며 쩔쩔매는 살림살이가 더 뒤죽박죽이 되었고 요리에 몰두 하다가 아기 음식(죽) 준비가 늦으면 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기계처럼 잘도 아는지 악을 쓰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허둥대기가 일쑤였습니다.
남편은 그럴듯한 새로운 음식 한 번 먹기 전에, 부풀어 오르기 직전에 내려앉은 빵을 먹으려다 단념하기도 하였고 몇 시간 기다렸다가 겨우 이거야 하고 별거 아닌 것 같은 음식 한 접시를 먹는 적이 허다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다가 시간이 없어 냉장고에 넣어 둔 후에 잊어버려서 며칠 후에는 파르스름한 곰팡이가 덮힌 것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은 셀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기다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때는 손님을 앉혀 놓고 생각 했던 것보다 왜 그리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제 자신이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갈수록 오래 걸려서 만들어도 결과가 그저 그런 음식보다는 여기저기서 테크닉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 했고 항상 배운 것을 내가 더 잘할 수는 없을까 하고 연구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