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독립 기념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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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기온이 백도가 넘었나보다. 그래도 저녁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육 년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여름밤들이 기억난다. 한국에 맞춘 경기 시간 때문에 이곳에서는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의 4강 진출로 우리들은 흥분 속에서 결승전까지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는 거의 월드컵 단체 응원장이 되었다. 우리 어른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조금은 서툰 아이들도 다 같이 응원을 했다. 모두 붉은 색 셔츠를 입고 더러는 머리에 붉은 두건도 두르고 더러는 얼굴에 태극기도 그려 넣고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했다. 득점을 할 때는 함께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고 골을 뺏길 때는 탄식과 함께 눈물을 훔치며 한 마음으로 뭉쳐졌다. 그렇게 여름밤을 월드컵 열기로 지새우고 나면 뿌옇게 동이 터 오르곤 했다.
나는 그때 4강 진출의 감격만큼이나 가슴 떨리는 감동을 맛보았었다. 내 자식들을 한국 사람으로 키워보려고 주말 한국 학교에 보내 봐도 늘 겉모습만 한국사람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함께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나라를 응원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었다. 한국에 있는 ‘붉은 악마’들처럼, 그렇게 ‘대~한 민국’을 목청 높여 외치는 아이들의 모국애를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때를 생각하다보니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문득 든다. 엄마가 태어난 한국이 모국이니까 잘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내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정작 나는 내 자식이 태어난 미국을 얼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부모의 나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배우고 있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만큼 나는 내 자식이 태어나고 내 보금자리가 있는 이 나라 미국을 제대로 알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말이다.
며칠 있으면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올해는 주말과 맞물려서 긴 공휴일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거나 또는 가족끼리 모여 즐거운 휴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저녁에는 곳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면서 독립 기념일의 밤은 깊어 갈 것이다. 그날 밤에 불꽃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구경하며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함께 월드컵 응원하던 것도 이야기 해봐야겠다. 그때 그 감동이 아이들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미국 독립 기념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며 슬쩍 아이들에게 물어 봐야겠다. 엄마의 생뚱맞은 질문에 조금은 머쓱해 할지 모르지만 어쩐지 아이들과 함께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신나는 ‘이야기 여행 여름밤’이 될 것만 같다. 슬며시 미소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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