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깊은 인상을 갖기 마련이다. 나는 1968년 취재차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디뎠는데 그때 세 가지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째는 컴컴한 새벽에 출근하는 자동차의 물결이다. 강남이 존재하지 않은 당시의 서울 새벽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는데 미국은 어디를 가나 동이 트기 전부터 프리웨이와 하이웨이가 출근하는 자동차로 꽉 차 부지런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둘째는 수퍼마켓에 진열된 갖가지 등급의 쇠고기들이다. 당시 한국에는 수퍼마켓이 없었다. 갈비 한번 먹으려면 정육점에 찾아가 주인에게 어느 날 갈비가 들어오는지 물어본 다음 “좋은 것으로 부탁 합니다”하면서 ‘빽’을 써야 기름 없는 갈비나 안심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수퍼마켓에는 쇠고기가 갈비, 안심, 내장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다 그 위생처리가 깨끗해 비위생적인 한국의 정육점과 너무나 비교 되었다.
셋째는 크레딧 카드다. 현찰 없이 어떤 물건이나 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시 한국에는 크레딧 카드 제도가 없었다. 안내하는 친구에게 “그럼 TV등 비싼 물건들을 가득 산 다음 자취를 감추면 그 사람을 어떻게 찾지? 경찰을 동원해 수사하나?”등등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니까 친구가 웃으면서 “미국에서는 제도상으로 도저히 남의 물건 떼어먹고 도망갈 수 있게 되어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크레딧 카드 찢어버리기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워싱턴DC 근교의 미국제일침례교회에서 목사가 설교시간에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크레딧 카드를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해 신자들이 교단에 올라와 크레딧 카드를 찢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크레딧 카드 찢기 캠페인을 주관하고 있는 젠킨스 목사는 “경제난에 허덕이는 신자들을 교회가 더 이상 수수방관 할 수 없으며 빚 안지기와 소비억제가 미국민이 살아날 수 방법이다. 이를 행동에 옮기려면 먼저 크레딧 카드의 노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운동은 일부 가톨릭 교회에도 번지고 있다.
미국은 크레딧의 나라다. 크레딧만 있으면 좋은 집, 좋은 차등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래서 미국부자는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겉은 번쩍거리지만 속은 빚투성이의 형편없는 살림일수도 있다. 특히 코리언은 남에게 과시하는 것에 긍지를 느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크레딧 제도를 남용하여 분수에 넘치는 모양새를 갖추고 지내다가 불경기를 맞아 당황하는 케이스를 주변에서 자주 본다.
요즘 페이먼트를 못해 집을 차압당하는 한인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예전에는 코리언이 집을 산다면 은행에서 무조건 돈을 꿔주었는데 지금은 ‘코리언’이라면 서류가 진짜인가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다 대출을 극도로 억제한다. 코리언의 크레딧이 이번 불경기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내년까지 계속 되리라는 것이 경제계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살아남으려면 빚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레딧 카드를 여러 개 갖고 있다. 하나만 남기고 크레딧 카드를 모두 찢자. 미국이 파놓은 외상 인생에 말려들지 말자. 불경기를 이기는 비결중의 하나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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