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스트빌리지의 클럽 ‘리햅(Rehab)’에서 공연을 갖는 토라 브라바(한국명 김해나)는 뉴욕 클럽신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한인 1.5세 뮤지션이다. 19세의 나이에 3인조 여성 펑크 밴드로 첫 무대에 섰던 토라는 스스로를 현재는 일렉트로닉 댄스 가수로 소개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이스페이스 블로그에 나열되어 있는 ‘자신에게 영향력을 준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그 다양한 음악적 장르가 현란할 지경이다. 마이클 잭슨 같은 댄스 가수는 물론,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록커 트렌트 레즈노, 래퍼 카니에 웨스트 그리고 베토벤까지 한마디로 그녀는 어려서부터 모든 음악을 좋아했던 가수 지망생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다.
토라는 “비록 5살에 이민을 와 한국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고 한국말도 못하지만 현재까지 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가 한국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한국적인 감수성이 음악을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줬다고 믿는 그녀는 “90년대 후반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일렉트릭 음악을 전통 타악과 함께 무대에 올리는 시도 역시 그때부터 시작됐고 퍼커션 연주자 박봉구씨와의 협연도 지속되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묻자 난생 처음 성에서 공연을 했던 호주의 ‘콘서트 인 캐슬’과 함께 의외로 플러싱 도서관 공연을 꼽았다. 우선 플러싱 도서관 지하에 그렇게 넓고 음향시설이 양호한 강당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는 것. 토라는 “대부분 노인과 주부, 어린 아이들로 이루어졌던 청중들이 밴드에 노래에 맞춰 열정적으로 호응하고 계단으로 내려와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비록 작은 규모의 무대에 주로 서지만 자신을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제 음악은 언제나 주류(메인스트림)를 지향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죠.” 결코 쉽지 않은 이민자 자녀의 시절을 보내면서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 감상이 큰 탈출구였다는 김해나씨가 가장 불리길 바라는 명칭은 ‘아티스트’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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