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
바닷가를 따라 걷는다
파도 끝이 다가와
유리를 깔아 놓음 같은
모래밭 가를.
새 발걸음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완전한 인장을 찍는다
자그마한, 허나
황제의 거만한
걸음걸이 마냥
선명한 발자국을.
성큼 성큼 활보하여라,
황제는
넓고 번쩍이는
산책길을 따라 활보하고
바다는
다시 번쩍이도록
닦기 위하여
고개 숙여 절한다.
(케이 라이언의 ‘당당한 걸음걸이’, ‘Chop’ by Kay Ryan from ‘The Niagara River’, 2005)
여름철에 바다를 찾아 모래사장을 거닐다 보면 갈매기와 파도가 눈에 뛴다. 갈매기는 먹이를 찾아 모래사장을 거닐고 파도는 얼마의 간격을 두고 모래에 부딪힌다. 시인은 갈매기의 발자국과 파도의 부딪힘에서 인간과 자연이 간직하고 있는 다른 모습, 아니 인간의 본능적인 성품과 자연의 본질적인 성향을 표출하고 있다.
인간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갈매기마냥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고개를 끄덕이며 날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활보하며, 완전하고 분명한 역사를 남기고자 애쓰는 존재이다. 황제가 유리를 깔아놓은 듯 번쩍이는 활달한 왕도를 거만스럽게 활보하면서 자기의 치적을 인간역사에 남기고자 하듯이.
그러나 자연은 인간과는 완전히 판이한 모습과 성향으로 인간을 대하여 준다. 황제의 거만하고 뽐내며 무엇인가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면, 자연은 갈매기의 발자국을 흔적도 없이 말끔히 지워버려 자연의 본 모습을 되살려 놓는 파도와 같이 인간을 대하여 준다.
더욱 그 자세가 인간의 거만한 자세가 아니라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히는 모습과 같이 고개 숙여 절하고 허리 구부려 무릎 꿇는 복종과 순종의 자세이다.
이 시는 두 개의 상반된 형이상을 갈매기의 걸음걸이와 파도의 부딪힘에서 표출한다. 뽐냄(거만)과 숙임(순종), 그리고 치적(역사)과 복귀(본향)이다.
케이 라이언 시인은 7월 17일 미국회도서관이 선정한 2008년도 여류 ‘계관시인’이다.
1945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아온 캘리포니아 레스비언 시인으로 고등학교 문예반에서조차 딱지맞을 정도로 그녀의 초창기 시는 아무 평론가도 거들떠보지도 아니 하였다. 1990년도 중반부터 그녀의 시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뉴요커’에 자주 실리기도 하고 10만 달러 상금의 ‘룻스릴리시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는 내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더듬으면서, 함축되고 접하기 쉽고 수수한 시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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