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S 미주리 함 터줏대감 ‘찰리 김’ 가이드
펄하버 아리조나 기념관 옆에서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포드 아일랜드에 정박해 있는 퇴역 전함 USS 미주리함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하루 수백여명의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 대표단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승선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미주리 함에는 10년간 관광 안내원으로 근무해오며 수많은 관람객을 맞고 있는 찰리 김(사진 한국명 찬기, 74) 옹을 만나볼 수 있다. 김 옹과 미주리함의 인연은 남 다르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시 서울 효제소학교 1학년 생이었다는 김옹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주, UC 버클리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LA 유니온 뱅크, IBM, RCA 등지에서 프로그래머로 다년간 근무한 바 있다. 그런 김 옹이 1999년 하와이로 이주해 온 것은 다름아닌 바로 USS 미주리 함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2차 대전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투입됐었던 미주리함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던 김 옹은 1998년 당시 존 H. 달튼 해군장관이 이 역사적인 함정을 현재 미주리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USS 미주리 기념관 협회’에 기증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자 이곳에서 근무하고 싶어 오랜 세월 거주해 온 캘리포니아를 과감하게 떠나 하와이로 이주해 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김 옹은 애초 미주리 기념관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가이드 역을 맡길 원했으나 기념관측은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의 수에 비해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일어를 할 줄 안다면 일본인 가이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김 옹은 “일본에서는 매년 7,000-9,000여명의 학생들이 미주리 함을 방문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한국어로 안내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며 아쉬워 했다. 김 옹은 “독도분쟁으로 한일역사에 대한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는 요즘 하와이의 한인동포들이 이렇게 훌륭한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가까이 있는데도 찾지 않고 있어 아쉽다”며 한국방문객들과 동포들의 방문을 기대했다,
김 옹은 무엇보다 “자라나는 한인 어린이들이 치욕스러운 일제시대의 막을 내린 무대이자 6.25당시 한국에도 참전해 활동했던 USS 미주리 함을 방문해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다면 매우 유익한 산 교육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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