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교육국 산하 특수반에서 교육현장 보조 교사로 일한지 10여 년이다. 그 긴 세월동안 특수 장애 학생들과 함께 겪은 경험과 추억이 많다.
그 중에서 엘리엇이라는 자그마한 유치반 학생이 요즘 많이 생각난다. 갈색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이 학생은 자폐증상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정상아들보다 뛰어난 면이 많았다. 기억력이 비상하여 단어들을 많이 알고, 책 읽기를 좋아하여 거의 틀리지 않고 문장을 읽을 수 있었고 글씨가 매우 반듯하였다. 그래서 특수반 대신 정규반에서 정상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반면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새를 무서워하였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노는 시간이면 아이들 주위를 맴돌면서 혼자 놀았다. 누군가 “안녕, 엘리엇?”하고 말을 걸면 대답을 못하고 “안녕, 엘리옷?”하고 똑같이 따라할 뿐이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하는 여러 형태의 표현들을 곁에서 이해하고 답해주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기대가 이루어질 때마다 아이의 부모 같은 심정으로 함께 기뻐하고 그러지 못할 때는 함께 안타까워하는 것이 특수반 교사들의 삶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름방학 직전 반 전체가 가까운 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왔을 때였다. 모두 교실로 돌아온 후 엘리엇의 어머니가 시원한 물병을 엘리엇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물병을 입에 대고 맛있게 들이켰다. 그때 내가 물었다. “물이 시원하지, 엘리엇?”
그러자 아이는 물병에서 입을 떼더니 이렇게 말했다.
“목마르세요(Are you thirsty)?”
상대방의 말을 똑같이 흉내만 낼 줄 알았던 아이에게서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질문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완벽한 문장으로…. 지금까지의 일방적 말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통하는 소통의 대화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나는 엘리엇을 껴안았다. 그리고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리엇, 엘리엇이 그렇게 물어봐줘서 나는 이제 목이 안 마르단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있던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챙겨준 것이었다. 지난 가을 이후 9개월을 같이 지내는 동안 처음으로 들어본 따뜻한 대답이자 질문이었다.
엘리엇이 비록 다섯 살의 어린 학생이지만 나를 믿고 마음을 열기까지 아이 자신도 많이 노력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아이는 더 이상 다가오는 새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웃음이 눈에 눈물이 그득하고 탈진상태에 이르도록 멈추지 않던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학년을 끝내면서 엘리엇이 나에게 준 깜짝 선물에 나의 가슴은 여전히 감동으로 벅차다.
아이들은 그 자체가 희망이다. 엘리엇의 입가에 매달려 있는 작은 미소처럼 마음속에 이미 자라고 있는 희망의 싹이 넝쿨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날을 고대한다.
개학을 하고나면 엘리엇은 어떤 다른 선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할까.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조정화/특수반 보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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