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막 첫날 펜싱 사브레 여자 개인전에서 미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마리엘 자거니스가 국가 연주와 함께 게양되는 국기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끝내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됐다.
40년전인 1968년 멕시코 올림픽때 남자 육상 2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는 시상식때 국가와 국기가 게양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치켜들고 시종 고개를 떨구었다. 이후 스미스는 선수단에서 쫓겨났지만 당시만해도 서슬 퍼렇던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무언의 항의로 흑인 민권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성조기를 놓고 한명은 눈물을 흘렸고 한명은 고개를 떨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첫 흑인 대선 후보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작은 성조기 모양의 배지를 가슴에 착용하지 않아 ‘애국심’ 논란에 휩싸였었다. 아프리카 케냐 유학생 아버지와 미국 태생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오바마는 역대 대통령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배경의 소유자다. 진보주의자들은 진정한 애국심은 배지 같은 상징물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위대함에 대한 막연한 찬양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할 때 일어나 정부를 바로잡는 것이다.
반면 보수를 대변하는 공화당 후보 존 맥케인 상원의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미국을 위해 싸워온 해군 장성 출신이며 맥케인 자신도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되어 5년간을 ‘정글 감옥’서 보냈다. 맥케인은 포로시절 한 동료가 속옷에 성조기를 꿰매어 입고 있다가 발각돼 뭇매를 맞고도 또다시 꿰매 입었던 장면을 보면서 자랑스러웠다고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배지를 거부하는 오바마가 국가를 짊어지고 갈 애국자로 보일리 없을 것이다.
미국의 동시 ‘아메리카’에 ‘우리들의 선조가 묻힌 땅/순례자의 땅’이라는 내용이 있다. 아버지가 죽고 할아버지가 죽은 이곳이 내 조국이니 당연히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보수주의 애국은 가족의 개념처럼 소속감에 의한 ‘맹목’을 요구한다.
민주당내 진보주의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과거 인종차별, 인디언 학살의 그릇된 역사, 침략등 과거 순례자들이 저지른 수치스런 역사는 가린 채 ‘위대함’에 대한 자부심만으로는 제대로된 애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영국과 독립 전쟁을 치를 당시의 애국심은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국은 과거의 집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주장한다.
지금 베이징에서는 지구촌 젊은이들이 국가의 이름을 내걸고 28개 종목 302개 금메달을 향한 치열한 메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박태환이 한국 역사상 첫 수영부분 올림픽 금메달 소식으로 가슴이 울렁 거리고 콧등이 시큰 거린 이유는 기자가 한국에서 태어나 내발로 태평양 건너온 이민 1세대라서 그럴 것이다. 아마 보수주의자들은 기자를 애국심이 의심스러운 믿을 수 없는 동양인으로 볼지도 모른다. 미국의 군사 기밀을 빼 한국에 준 혐의로 연방 교도소에서 9년의 옥고를 치렀던 로버트 김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국민들도부터 영웅 취급을 받았다. 미국에서 배반자가 한국에서는 애국자로 변해버렸다.
한국 야구팀이 미국에 8대7로 역전승을 거뒀다고 펄펄뛰고 기뻐할때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미국팀의 패배에 고개를 숙이고 아쉬워했다. 박태환이 200미터 자유형에서 미국의 수영 다관왕 마이크 펠프스에게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을 때도 우리 아이들은 ‘펠프스’를 외치며 기뻐했다. “한지붕 두 나라”가 된 느낌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깊어갈수록 더큰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서울시 나성구민’으로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흥분하며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캘리포니아 남가주에 자리잡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한국 문화를 간직하고 이곳에 뼈를 묻는 미국민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놓고 말이다.
김정섭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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