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꼬박 12년9개월이 걸렸다.
1995년 11월 애지중지하던 막내 딸 린다 박이 어바인 자신의 집 거실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피살된 채 발견된 이후, 범인들을 붙잡아 법의 최종 심판이 내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사건이 발생한 뒤 가족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시간을 보냈다. 사건이 발생하고도 그 충격이 너무 깊고, 먼저 간 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린다 어머니는 딸이 사용하던 방을 오랫동안 그대로 놔두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아내의 그런 모습에 남편은 숨어서 아픈 가슴을 달래야 했다. 그나마 교회를 통해 치유와 위안을 얻은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큰 딸이 출가해 재롱둥이 손자 두 명을 낳아 집안에 웃음을 되찾아준 것도 큰 위로가 됐다.
그러나 재판은 또다시 린다의 가족들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시간 어렵게 가슴속에 묻어뒀던 악몽을 다시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거의 매번 법정 방청석에 앉아 범인들을 바라보던 린다 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범인들이 마지막 진술에서 “아이 엠 소리”(I’m sorry)라며 사죄했을 때, 그의 머릿속은 모든 감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판사의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13년 가까운 그들의 ‘슬픈 여행’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2. “한 10여일 걸릴 것 같아. 돌아오면 연락하마”
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부 잘하던 아들이 중동부의 한 유명 사립대에 진학해 기숙사에 데려다 주기 위해 온 가족이 차에 짐을 가득 싣고 ‘대륙횡단’에 나선 것이다.
비행기로 가면 훨씬 쉽고 빠르게 갈 수 있건만, 사치스럽게 보일 수 있는 ‘대륙횡단’에 나선 것은 돈이, 아니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체류신분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결국 자동차 여행 밖에 선택이 없었다.
2년 전쯤이었던가. 모처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큰 애가 자기도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때가 됐다고 말하는데 기분이 그렇더라고.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의 사정을 차근차근 얘기해 줬더니 금방 이해하더군. 녀석 다 큰 것 같아”하며 껄껄 웃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쯤이면 캠퍼스에 도착해 아이가 생활할 기숙사 방을 구경하고, 짐을 부리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친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은 광활한 미국 땅을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요즘 세상의 이목은 온통 베이징에 쏠려 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새로운 기록을 쏟아내고, 순간순간 펼쳐지는 멋진 플레에이에 환 호와 탄성,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밤을 새며 TV 앞에 매달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 순간을 위해 4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며 혹독한 훈련과 자신을 희생해 온 그들의 삶을 보기 위한 것이다. 승자와 패자간의 엇갈리는 희비도 관심거리지만, 좌절과 재기, 그리고 도전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뒷얘기는 더욱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인생은 고난 속의 기쁨’이라는 사치스러운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힘겨운 여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멋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이제 린다의 가족들은 지난 슬픔을 뒤로 한 채 새로운 희망을 찾아 여행에 나설 것이고, 얼마 뒤 돌아올 친구 역시 이번 여행을 통해 더욱 강한 의지를 다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
황성락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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