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 열차참사로 미국인 남편 잃은 미셸 린트너씨
“괜찮습니다. 가족 일이고 이제 제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죠” 대나무 발이 쳐진 집 대문을 열고 힘 없이 밖으로 나온 한인 여성 미셸 린트너(46)씨. 16일 벤추라카운티 시미밸리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처절한 심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3년 전 글렌데일에서 발생한 메트로링크 통근열차 참사 당시 부상자 구조를 도와준 ‘영웅’으로 칭송받던 미국인 그레고리 린트너(48).
3년전 열차사고 땐 부상중에도 타인구조
이번에도 중상자들 돌보며 자기 희생
그러나 지난 12일 채스워스에서 발생한 메트로링크 사고는 결국 그를 영원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린트너의 미망인이 한인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린트너는 11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글렌데일 통근열차 사고의 부상자였다.
LA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당시 찰과상과 타박상만 입어 사고 열차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도 큰 상처를 입은 다른 중상자의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구조요원을 함께 기다렸다는 것.
글렌데일 열차사고 당시 린트너 옆에 있었던 중상자 패티 허드슨은 “그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라고 위로했다”면서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회고했다.
글렌데일 사고는 2005년 1월 26일 오전 6시께 통근열차가 철도 건널목에 서 있던 지프와 부딪치며 선로를 이탈하며 마주 오던 다른 열차와 충돌, 11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던 대형참사였다.
린트너는 글렌데일 열차사고 후에도 사고의 기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사고열차에 탔던 승객들과 계속 만났고 열차사고와 사고 관련자의 재판과 관련된 신문 기사들을 수집하는 등 열차사고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미셸은 대학에서 남편을 만났고 그는 영어공부를 도와줬고 강의노트도 보여줬다고 한다. 미셸은 대학을 졸업하기 1년 전 청혼을 받았고 그는 여왕처럼 자신을 대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결혼을 했고, 내 인생 영원히 그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미셸씨의 언니 김 노스씨는 16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동생은 남편의 시신을 아직도 인도받지 못해 언제 장례식이 열릴지 모른다”며 “아직도 (미셸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 한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박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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