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26년만에 드디어 미국 시민이 되었다. 영주권자로 이십여년을 살면서 그다지 큰 불편이 없었으므로 꼭 시민권을 취득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시민권 신청료가 두배로 인상한다는 바람에, 시절도 하 수상하고 911사건이후로 외국인에 대한 새로운 제재들이 생겨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일단 취득해두면 편리하겠다 싶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시민권 신청서를 선뜻 내놓고 여차여차한 과정을 거쳐 일년여 만에 드디어 “Citizenship Ceramony”를 하게 된 것이다.
기념식 통지서를 찬찬히 읽어내려 가다 보니 편지의 말미에 식장 현지에 주차가 여의치 않으므로 가능하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대중교통 수단이라..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고등학교시절 이후로 이십여년을 이용해보지 못한 대중교통수단. 생각만해도 아련하게 녹아드는 버스에 얽힌 추억들, 안내양 언니, 회수권 그리고 기름냄새까지…
아! 그립다. 그 시절 그 바람, 그 냄새… 그리고 그 사람들…
자기 차가 있는 사람들도 여러가지 편리함의 이유로 많이들 애용한다는데, 나는 어쩜,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두려움같지 않은 두려움으로 몇번을 망설이기만 했지 정작 버스 한번 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회사도 하루 쉬겠다 혼자 소풍삼아 샌프란 거리도 거닐어보고 하면서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날부터 경험자인 남편과 아들의 도움을 받아 직선코스 돌아가는 코스 혹시 잘못 갔을 때의 대처방법 등의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도 몇 번을 망설이다가 드디어 아침이 되었다.
십년이 넘은 푸른색 남방셔츠에 살짝 찢어진 낡은 청바지, 거기에 어린시절 애장품인 빨간 메신저 가방까지 둘러멨다. 나름 핫껏 멋을 내고 우여곡절 끝에 Bart 표를 끊어서 정거장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설레이던지… 귀에 꼽은 MP3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배경음악이 되어, 마치 정류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영화 속의 한 여인이라도 된 기분이랄까?
Bart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또 일품이다. 혼자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나는 사람들 틈속에 있었는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작은 자동차 상자안에서 옆사람과 대화는 고사하고 눈도 한번 안 마주치면서 그렇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옯겨다니기에 바빳지, 철저히 주위사람들과는 어떤 교감도 없이 혼자였던 것이다. 차사고가 나지 않고서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더라고 누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과연 그랬다. 하지만 여기는 좀 달랐다. 서로 호흡을 느끼고, 살짝 살짝 누군가를 주시하고 관찰할 수도 있고,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내가 그들을 보듯 나도 그들에서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Bart에서 내려 Powell street쪽 출구를 한참만에 찾아나갔더니, 거기 바로 Cable Car가 있었다. 마치 관광객이 된냥 줄을 서서 표를 사고 기다리며 옆사람이 건네는 몇 마디에 대답하는 것까지도 즐거웠다.
두 시간여의 기념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한참을 걸으며 이곳저곳 상점들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버스값 아낀 돈으로 과자도 사먹으며 메이지 않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자유(?)를 만끽했다.
아! 돌아오는 Bart에 올라탈 때의 그 아쉬움… 현실속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어쩔 수 없이 타야하는 갑갑한 느낌?!
나의 소심한 일탈,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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