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주 어리더라도, 밀가루를 후정거려 난장판을 만들더라도 요리에 재미를 들일 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엄마가 요리를 하면 딸애가 와서 거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이었을 때였습니다. 집안 치우는 것이 무지하게 중요한 우리 집이라 이다음에 하라고 하며 말렸습니다. 방과 후 일주일에 한번 플룻을 배우러 다녔고 하루는 힘든 수학을, 하루는 독일 학교에, 그리고 주말에는 한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답게 뛰어 놀 새도 없이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안쓰럽게 생각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애들을 좀 볼 것이지) 요리는 열 네 다섯살쯤 되어 가르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학년이었던가 7학년 때였습니다. 친구 집에 데려다 주러 갔는데 그 집 엄마는 외출하고 없고 키가 작은 데보라는 닭고기 가슴살에다가 밀가루, 달걀, 빵꼬를 묻혀서 철판에 지지고 있었습니다. 한 살이 어린 아이인데. 아차! 저는 할 말을 잃고 그 아이가 만드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해 보자고 은근히 꼬셨습니다. 대답은 그런데 관심없어였습니다. 한 두 주가 지나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대답은 여전했습니다.
그 후부터 학생들과 그런 얘기가 나오면 저는 아이들이 아주 어려도 좋으니 밀가루를 후정거려 난장판을 만들더라도 재미있어 할 때 가르치라고 충고 하였습니다. 어지러진 부엌은 치우면 그만이지요 뭐.(아쭈) 고등학교 들어 갈 때쯤에서는 용돈을 몽땅 털어 머리에 노르스름한 새치기로 물을 들였습니다. 그 새치기가 햇빛을 많이 쐬면 주황색으로 변하기도 하였습니다. 미장원을 찾는 횟수가 늘면서 새치기가 아니라 거의 몽땅 노랑머리로 착각할 정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끼던 콘텍트 렌즈는 초록색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손톱이 너무나 예쁘고.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동안 시간 없어 못 쓰던 편지도 쓰고 다른 학부모들과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성장한 아이들이 있는 학부모의 조언을 듣는 좋은 찬스였습니다. 그 당시 교장 선생님이시던 김송희 선생님도 아이들이 대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딸의 외모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해야 좋을지요? ‘오색 찬란한 외모는 한때의 반항을 대신 하는 것. 다 지나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 됨됨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 유난히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아마 그런 조언을 듣지 않았으면 ‘그건 안된다’고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딸이 해 보고 싶은 노란 새치기 머리든 그 아름다운 초록색 눈동자든, 그래, 하고 싶으면 해봐 하고 마음 놓고 얘기 했습니다. 하얀 손톱도 물론.그런데 그런 색은 참 천해 보이는 거야 하고 토를 달았습니다.
금발인줄 알고 불어대던 남자들의 휘파람에 처음엔 신이 나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별거 아닌 일이 되어 버렸고 대학 입시 준비 공부가 힘들어져서인지 미장원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내 머리 색이 좋아’로 돌아 왔습니다. 환상의 초록색 눈동자도 갈색으로 돌아 왔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그 충고를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 하였지요. 친구들과 파티에 가면 맥주를 들고 오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곤드레가 되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식사 때에 우리가 술을 마시니까 우리 딸에게도 한 모금 정도만 따라주고 맛만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다음에 자라서 술을 어느 정도 사교로 마실 줄은 알아야 된다고 생각 했으니까요. 단 자기가 필요한 단계에서 절제를 하도록 가르쳐야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집에서 그것이 허용되어서 그런지 친구들과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담배가 피고 싶으면 숨어서 하지 말고 집에서 피우라고 하였습니다. 몰래 하는 재미가 없어서인지 다행히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마약 문제로 퇴학당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숨어서 몰래 하는 것을 어느 부모든 다 걱정 하는 일. 너무 강경하게 말하면 발악을 할 수도 있는 일.
네 몸을 사랑해야 돼, 그런 것은 자기를 파멸시키는 것이야라고 대단치 않은 것처럼 조용하게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는 손대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 가까웠을 때 드디어 좀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 딸의 손을 잡고, 마약, 술, 담
배 등으로 속을 안 썩이고 잘 자라줘서 엄마가 참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씨익 웃으면서 저를 끌어안아 주었습니다.한국에서 고등학교 동창들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이, 얘, 너는 미국식이라 다르구나. 한국에서는 고맙다가 뭐니? 너 그러면 죽여지!우리는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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