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 후보자인 새라 페일린이 처음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그녀가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힐러리 클린턴을 대신하여 발휘할 영향력은 클 것 같았다. 그리고 여성 유권자들의 매케인 지지율에 힘을 보태 줄 것 같았다. 또한 그것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매케인이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현 알래스카 주지사인 페일린은 미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자 지명 수락 연설을 한 그녀는 연설 곳곳에서 따끔한 유머로 웃음과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날 미국 언론은 ‘새로운 정치 스타’의 탄생을 선언했다.
페일린은 17살에 미혼모가 된 페일린의 딸 브리스털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다.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막내아들에 대해서는 그를 ‘대단히 특별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페일린은 ‘보통 가정’의 ‘특별 엄마’가 되었고 수천만 미국 중산층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부통령감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미여성기구(NOW)는 페일린 지명 직후 “모든 여성이 다 여성 권익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란 긴급 성명을 냈다. NOW는 “여성들이 힐러리를 지지한 것은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 이슈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오바마의 러닝메이트 바이든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여성폭력 방지, 양성평등 임금 등 여성 이슈 해결을 위한 활발한 입법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NOW가 페일린을 ‘반여성’ 후보로 지목한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여성 권익을 분명히 대변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딸이 강간에 의해 임신할지라도 낙태 반대를 강행하겠다는 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극단적 보수주의, 인위적 피임 반대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렇다면 여성 유권자들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여권주의 성향의 남성에게 표를 던지려는 것일까. 페일린이 단지 여성 권익을 분명히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여성 후보로 치부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여성들은 민주당 경선 때 힐러리가 여성의 권익 대변에 가장 적합한 인물임에 동의함에도 모두 그녀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결국 여성 정치에 대한 신뢰를 여성 스스로 갖지 못하는 문제를 표출한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있어 왔다. 그것은 특히 역대 여성 국회의원 당선자 비율의 저조 현상에서 뚜렷이 보여진다. 유권자의 대부분은 여성 후보자에게 공을 들여 봤자 그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자신의 권익을 보장해 줄 후보자를 원한다면 여성의 실제적 경험이 국회입법 기능에 연결되어 정치, 문화 구조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여성에 대한 법의 시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영향을 준다. 즉 법의 여성에 대한 관점과 기준을 변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인 페일린보다 여권주의적 성향을 가진 남성 후보자가 여성의 권익을 더 잘 대변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성 정치를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여성 유권자의 의식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박소연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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