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미국 정부가 요청한 구제금융 법안이 의회에서 제동이 걸림에 따라 당분간 시장의 돌발 상황을 수습하는 역할은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맡아야 한다.
특히 발권력을 보유한 FRB는 최종대부자로서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을 막아야 하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다.
이런 FRB가 큰 고민에 빠졌다.
FRB는 이미 미국 최대의 보험사인 AIG의 파산을 막기 위해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단행하는 등 이미 상당한 정도로 시장개입에 나선 상태다.
미 하원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의 통과를 보류시킴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은 FRB가 유동성 문제로 파산상황에 몰리는 금융회사들에 대해 선별적으로 구제 혹은 도산을 결정해야 한다.
FRB는 자금난에 처한 금융회사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장참가자들은 어떤 회사가 AIG처럼 FRB의 구제 혜택을 받을 것인지, 또 어떤 회사는 리먼브러더스처럼 구제 혜택을 입지못하고 파산의 운명을 맞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입장이다.
FRB로서는 이런 불안감도 함께 잠재워야 하지만 동원 가능한 카드가 극히 제한적이다.
현재로서는 FRB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개별 금융회사에 구제금융을 단행하는 것과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 ▲정책금리 인하 등이다.
이 가운데 정책금리 인하는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FRB는 지난해 중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발발 이후 연 5.25%이던 연방 기준금리를 2.00%까지로 하향조정했지만 금융시장의 동요는 계속 증폭됐으며 오히려 인플레이션 우려만 키웠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재임중 저금리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추가로 금리를 더 낮추기 어려운 형편이다.
월가에서는 금리인하의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지만 FRB는 현상황에서 금리를 낮춘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FRB는 대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계속 펴 왔으나 이 역시 위기를 진정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FRB는 29일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와프 방식으로 유동성 공급능력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내에서는 만기 기간입찰대출(TAF)의 1회 발행 한도를 10월6일부터 250억달러에서 750억달러로 3배로 늘리는 등 단기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유동성 공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자금이 전혀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 가운데 어느 곳이 파산할지 몰라 서로 단기자금을 융통해주기를 꺼리는 신뢰붕괴의 상태이기 때문에 FRB가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하더라도 막힌 곳에 숨통을 틔우지 못하는 형편이다.
끝으로 남은 수단은 개별 금융업체에 직접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경우다.
파산상태에 처한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JP모건체이스와 AIG 등이 FRB의 구제금융의 혜택을 직.간접으로 받았다.
그런데 FRB가 구제금융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이 있어야 하는데 FRB 내부사정을 살펴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FRB의 발권력은 무제한이다. 그러나 돈을 마구 찍어 낼 경우 시중에 유동성 과잉을 초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기 때문에 무한정 발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노릇이다.
3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FRB의 장부상 동원 가능한 재원은 1조2천억달러다.
그러나 이 가운데 1천500억달러가 은행에 대한 특별대출 형태로 나가 있고 AIG와 투자은행 등에 긴급대출 등으로 2천620억달러가 빠져나간 상태다.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는데 290억달러의 보증도 섰다.
그밖에 통상적으로 국채의 매입과 판매 등으로 통화량조절을 위한 공개시장 조작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FRB로서는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제한적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의회에서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 처리가 계속 늦어질 경우 FRB가 금융회사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은 갈수록 고갈되고 시장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FRB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다.
s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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