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째 아침에 눈을 뜰 때 마다 손발이 붓고 입안이 말라오는게 뭔가 건강에 적신호가 온 듯 하다. 유학생 보험이 있긴 하지만 이곳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섣불리 병원에 찾아가기도 그렇고 그냥 이러다 말겠지 싶어 몇일을 그냥 보냈다. 푸욱 쉬면 좀 낫겠지 싶은데 일상이 너무 바삐 돌아간다.
중간고사며 페이퍼 제출이 줄을 서 있으니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기도 그렇고 일하러 가는 스케쥴을 맘대로 바꾸기도 그렇다. 그래도 그 중 만만한 것이 집안일이지 싶은데 아들 녀석이 먼저 아프다고 턱하니 지고 누웠다. 감기 몸살이란다. 일이 줄기는 커녕 더 늘어버렸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입맛도 없단다. 이거면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저거면 먹을 수 있을거 같다 죄다 만들기에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음식들만 늘어놓으며 계속 어린양이다. 엄마가 아픈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 하다.
몸도 아픈데 길에서 기다리지나 않을까 싶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아들 녀석 픽업을 하러 갔다. 웃으며 차에 타길래 좀 나아졌나 했더니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저녁 반찬이 뭐냐고 묻는다. “엄마는 좀 어떠세요?” 이런 인사 좀 먼저 해주면 어디 덧이라도 나는 것일까? 나름 제 걱정에 허둥대며 달려왔는데 갑자기 섭섭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있는 거 그냥 먹으면 되지 엄마가 언제 반찬 할시간이 있었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고도 성에 차지 않아 계속 중얼중얼 혼자서 신세 한탄을 했다. 엄마는 안 아픈줄 아느냐, 곧 대학가고 기숙사 가서 살면 엄마 볼 일도 없는데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그 뒤론 몇해에 한번 얼굴이나 보겠냐며 일년 남짓 같이 있으면 이제 내내 헤어져 살아야 하니 그냥 엄마가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하며 푸념을 했다. 엄마 없으면 네가 얼마나 아쉬울지 아냐는 항변을 해보고 싶었던듯하다.
그런데 하다보니 앗차 싶었다. 저렇게 다 큰 녀석이 엄마랑 같이 안 산다고 뭐 아쉬울게 있겠냐 싶은게 엄마 잔소리 안들을 것을 생각하니 신이 나서 죽겠다고 하면 더 서운해져서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은근슬쩍 다가오더니 “왜 엄마를 일년 남짓만 보는데? 난 엄마 옆에서 평생 엄마를 이렇게 귀찮게 굴건데?”그러면서 어깨를 툭치고 장난을 건다.
엄마를 평생 귀찮게 굴거라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야 마땅한데 웬지 그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귀찮게’라는 단어보다 ‘평생’이란 단어가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인듯 하다. 대학에 가면 얼굴 보기도 점점 힘들어 질거고 행여 제 짝이라도 생기면 이제 엄마는 영원히 뒷전이지 싶었는데 평생 엄마 곁에 있을거라 하니 그 소리가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물론 평생 엄마 곁에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저도 독립을 하고 제 인생을 꾸려야 하겠지만 빈말일지언정 섭섭한 엄마의 마음을 배려해준 아들의 그 한마디가 너무나 고마웠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약자는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엄마와 아들. 엄마가 늘 약자일 수 밖에 없다. 좀 전까지 아무거나 먹으라고 화를 냈으면서 아들이 남긴 그 한마디에 금새 “뭐가 먹고 싶은데?”하고 묻는다. 갈비탕이란다. 엄마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냉동칸에 들어있는 갈비로 탕을 끓여 저녁상에 대령하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갈비탕은 내일 메뉴로 하기로 하고 영양보충겸 재워놓았던 엘에이 갈비를 구워먹기로 했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옷을 벗을 틈도 없이 부엌에 들어서서 저녁을 차렸다. 아프다는 녀석이 쌈을 싸서 우적우적 잘도 먹는다. 설겆이를 하고 서 있는데 제 먹은 그릇조차 식탁에 가득 늘어놓은 체 벌써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더 아프다는 건 그새 또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러면 그렇지. 매번 속고 지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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