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박사
동서문화센터 연구원
1948년 4월 말 평양에서의 ‘김 구’와 ‘김 규식’
건국을 위한 5월 10일 선거를 불과 3주 앞둔 4월 19일 남북협상을 한다며 김구는 북행길에 올랐다.
그날 김구가 머물던 경교장 일대는 그의 북행을 저지하려는 시위 때문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김구는 “가야만 해. 38선을 배고 죽을망정 가야 돼!”라고 외치며 북행을 감행했다. 그러나 김규식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믿을 수 없었는지 몇 가지 요구조건을 김구 편에 전달했고 그 조건이 받아들여진 후인 4월 21일 평양으로 갔다.
평양에서는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인 4월 19일 모란봉극장에서 남쪽 대표(좌익정당 및 남로당 전위조직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개최되었다. 김일성, 박헌영 등은 북측의 건설 업적으로 칭송하며 남측의 탄압을 비판하고 미국이 남한을 식민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남한의 5.10선거를 저지하여 조국을 위험에서 구해내자고 연설했다.
김일성과 김두봉은 22일 아침 김구와 김규식이 묵고 있던 호텔에서 만났다.
김구는 김일성을 따라 대회가 열리는 모란봉극장으로 갔으나 김규식은 일체 공식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김구와 두 수행원이 모란봉극장에 들어섰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 졌으며 이에 고무된 김구는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남한에서 실시될 5.10선거 저지 투쟁을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석회의는 남한의 정치정세를 비난하는 결의안, 한반도 인민들에게 남한 선거 저지 투쟁을 호소하는 결의안, 그리고 한반도에서 외국군 철수를 주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4월 23일 끝났다.
그런데 이 같은 결의안을 논의하는 회의는 토론이 허용되지 않았다. 지명된 대표자들이 나와 준비된 천편일률적인 내용, 예를 들면, “이승만은 악한이다,” “단독선거에 반대하라,” “미국은 남조선을 식민지화 음모를 꾸미고 있다” 등의 내용을 되풀이했었다. 회의가 아니라 공산당 궐기대회였다.
그후 일주일 동안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 김두봉과 비공식 회담을 했지만 진전이 있을
리 없었다. 4월 25일 평양 회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대규모 궐기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30만 이상이 동원되었으며 김구를 위시한 일부 추종자들이 참석했다. 행사장에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진이 높이 걸려 있었다.
북측은 김구와 김규식을 평양에 오도록 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완전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평양으로부터의 초대에 정치 생명을 걸었던 김구와 김규식도 남한의 선거를 비난하는 결의안 이상의 중요한 성과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김구의 지나친 민족주의 정서가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했다. 김규식은 평양까지 갔지만 비교적 조심스럽게 처신했고 돌아와서도 선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쁜 상황을 피하려다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김구는 이승만을 형님이라 했지만 이승만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연 김일성과 무슨 합작을 시도하려 했는가.
당시 “삼균주의 학생동맹” 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에 갔던 조만제(84)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고했다. “이승만?김구?김규식은 모두 손해를 봤고, 김일성만 모양새가 좋아졌어. 협상을 하려 간 우리의 동기는 순수했지만 냉정하게 계산하고 임했던 북한에 우리가 이용당한 거요. …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연석회의는 자기네들의 공개적인 인민위원회야. 자기네 전국 대표들을 다 모아놓고 우리는 방청객으로 가만 앉아 있었어. 한 사람씩 의안을 내놓고 김일성이 박수치면 모두 따라 박수 치고 하는 식이었어. 김구?조소앙 선생이 단상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런 발언권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구와 김규식의 평양행을 구국의 결단으로 칭송하고 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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